23년 하반기부터
나에게 급격한 변화가 왔다.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충격이 커져
사람에 대한 환멸로 퍼졌다.
껍데기는 가라
외쳤던 신동엽 시인의 글처럼
껍데기 관계에 쏟는 에너지가 무의미해지고
겉으로 포장된 사람들이 급격히 싫어졌다.
그런 마음이 커지니
그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느껴졌던 관계와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게 되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24년은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었다.
24년 그때
그런 나는 엄마와 더 자주 통화를 했다.
정현종시인의 방문객 구절처럼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가지고
엄마를 찾아 엄마와 얘기를 나눴다.
엄마는 그때마다
사람은 원래 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이상해 보이는 사람도
이해가 안 가는 사람도
도무지 맞지 않는 사람도
너도 나도
알고 보면 다 불쌍하다고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같이 살아야 되는 게 세상이라고
"그렇게 같이 사는 거다.
어쩌겠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같이 살아야지.
그 사람도 살아야지.
다만 너무 맞추고 살려고 하지 마라.
너는 너대로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같이 또 각자 사는 거다.
너무 애쓰지 마라"
그렇게 마음속 폭풍을 겪으며 지나간 24년을 보내며
25년을 기대했다.
25년 시작부터 엄마의 기력이 떨어지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회복될 거란 안일한 기대는 꺾여버렸다.
엄마는 그토록 기다리시며 좋아하셨던 완연한 봄이 오기 전 천국으로 가셨다.
24년 엄마와의 시간이 나의 부서진 마음을 다독이다 지나간 것이 후회스럽다가도.
그래서 엄마와 더 얘기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좋을 때보다 힘들 때 엄마를 찾았다고 자책하다가도.
엄마가 그런 나를 하느님 앞으로 인도하셨구나 싶다가도.
그래서 엄마는 이 세상보다 천국에서의 삶이 더 행복하실까 싶다가도.
천국에서 영생을 생각하면 여든도 안된 삶이 너무 짧아서 통탄스럽다가도.
큰 고통이 길지 않았던 게 엄마를 위한 길이었다 싶다가도.
이 모든 게 엄마가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24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과 사의 번뇌 속에서 25년 봄을 나고 있다.
인간은 다 불쌍한거라는 엄마 말이 맞았다.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가지고
같이 살며 또 각자 삶을 사는 거다.
너무 애쓰지 마라.
이번 부활절 미사 강론에서 신부님은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따뜻함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성직자로서의 삶이라고 하셨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불편하다고
사람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고
따뜻함으로 다가가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하셨다.
24년 내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상대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따뜻함으로 다가가는 삶.
엄마의 말씀과 함께 정리해본다.
상대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따뜻함으로 다가가는 삶
그러나 너무 애쓰지 않는 삶
25년 내가 풀어야할 숙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