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님은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차도 내 지성도.....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는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데 다 선물이었더라고....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공짜로 받아 큰 부를 누렸지요.”
엄마는 이어령 선생님을 좋아하셨다.
삶을 꿰뚫어 보는 빛나는 눈속에서 부드럽고도 적확한 언어로 막힘없어 풀어내는 최고의 언변술사이자 지성인이고 천재라고 하셨다.
생의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를 보고 감동받아 엄마께도 전달드렸었는데, 인터뷰 내용도 감동하셨지만, 그 연세에도 여전히 빛나는 지성과 또렷함에 더 감동하셨던 것 같다.
이어령 선생님이 기독교 신자가 된 계기가 그분의 따님이신 이민아 목사님의 실명 위기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미 성당을 다니고 있던 두언니를 제외한 나머지 딸들은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성당에 나가게 되면서,
종교를 이렇게 시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걸까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 뜻을 받아들이고,
엄마가 천국에 계신다는 것을 믿기 위해
하느님을 믿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장례식 내내 위령 기도로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많은 분들과
위령회장님과 신부님 수녀님.
엄마를 위한 성스러운 장례미사와 성요셉으로 모실 때도 함께 해주신 신부님과 수녀님과 신자분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위령미사를 통해 엄마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해주시고 계신 많은 분들.
이 모든 것이 감사했고 축복으로 느껴졌고, 엄마를 천국으로 행복하게 인도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렇게 시작하는 믿음이 순수한 것인가 하는.. 그런 목적을 가진 믿음이 믿음인가 하는 믿음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 감사함과 의문이 혼재된 마음으로 우리는 엄마와 남아계신 아빠를 위해서 아빠를 모시고 매주 미사를 참석했다.
신부님의 강론은 짧았는데,
신기하게도 매 미사마다 가슴 깊이 박히는 말씀을 하셔서 우리 가족은 많이 놀라워했고, 강론 말씀에 대해 각자의 해석과 생각을 나눴다.
매우 이성적인 둘째 언니도 교리를 받게 된다면 우리 엄마를 통해 연결된 이 신부님을 통해서 받고 싶다는 마음과 그렇지만 이렇게 믿음을 시작해도 될는지, 종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이성과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지만 이 신부님의 강론과 교리를 받으며 점차 마음이 열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주 부활절 미사에서 세례 받으신 한분께서 자진해서 소감을 말씀하셨다.
그분도 지난가을 신자셨던 부인을 잃고 위령기도와 장례미사를 드리고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분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였다.
돌아와 이어령선생님 기사와 이민아 목사님의 글을 다시 읽었다.
이민아 목사님의 실명위기 앞에서 딸의 실명을 거두시면 당신을 믿겠다고 기도하던 최고의 지성. 합리적 이성을 대표하던 인문학자.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으니 그분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인 듯 새겨졌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기도하고자
신께 다가가는 것이 종교의 시작이고,
그것이 지금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신의 뜻을 헤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를 하며
신의 뜻을 내 삶 전반의 나침반으로 삼는 것 믿음이 아닐까.
성자의 삶을 사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살면서 미워하고 욕심내고 실수하면서도
내가 가진 부족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신께 기도하며 답을 구하고자 하고
신의 뜻을 헤아리며 나를 다듬으며 살고자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 가족의 믿음이 어떻게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앞으로 가고 있다.
엄마.
우리를 이끌고 가신 엄마.
지금 우리 가족이 가고 있는 길이
엄마의 뜻인가요?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인가요?
엄마
그래서 지금 천국에서 행복하신가요?
엄마도 마지막에 이르러 인생이 모두 선물이었다고 생각하셨나요?
엄마는 제게 선물이었어요.
엄마
감사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