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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by 막내딸

엄마가 돌아가신 지 49일째 되는 날이다.


50일 전이었던 날

큰언니와 통화했던 기억이 난다.

회사 고층부 엘리베이터 대기존에서 통화를 했었다.


엄마가 입원하시고

짧은 기간 동안 롤러코스터 같은 날들이 계속 되면서도

회사 내 자리에서 소리 내어 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날 나는 큰언니와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 와서

새어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은 층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메신저를 보내고

파트 내 조기 퇴근 메시지를 보내고 이른 퇴근을 했다.


그날

엄마를 보러 바로 내려갈 것인지 좀 더 대기를 할 것인지 고민을 하고

언니들과 통화를 하고

대기를 하기로 했다.


집에 와서는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잊혀졌지만

저녁쯤 업무 메신저와 전화를 받고

아이들을 재우고

엄마가 가족 카페에 남긴 글을 읽으며

살아있는 엄마를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글을 읽고 있는데

3월 19일 새벽 1시 52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울려왔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엄마가 예전에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난다.

35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다음 차례가 엄마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던 어린 그때

엄마가 피식 웃으며 얘기했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 병명과 상태를 듣는데

엄마가 너무 긴장되고

어쩔 줄 몰라서

의사 선생님 얘기를 듣는데,

평소에 쓰지도 않던 너무도 진한 충청도 사투리가 나왔다고 했었다.

뭐라 뭐라 설명을 듣고 대답을 하는데

"예" 나 "네"가 아닌

"야...!"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의 나보다도 어리던 때였다.


나도 그날 전화를 받고

내 모든 에너지가 그간 받던 전화하고는 다른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선고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에 꽂혀

더없는 낮은 자세로 전화를 받았었다.


그날따라 신호와 상황이 따르지 않았던 언니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남편을 깨우고 아이들을 깨우고

달려가던 고속도로

새벽이 오기 전.

뻥 뚫려있던 그날의 고속도로가 생각난다.


엄마를 보러 달려간 마지막 날

엄마께 마지막 인사를 전하면서도

그 시간이 얼마나 허락될 줄 몰랐고.

엄마를 보고

돌아가며 인사하면서도

바이탈 모니터를 보며.

시계를 보며.

엄마를 만지고 싶은데

세게 만지면 멍이 든다는 언니 말에

조심스레 쓰다듬던 엄마 몸

아직 따뜻했던 엄마 몸


언니들이 마지막 인사를 전할 때

나는 아직 따뜻한 엄마 발을 어루만지며

어린아이처럼 엄마 엄마 하며 울기만 했다.


어느 순간

바이탈 모니터에서 심전도는 일직선을 긋고

산소포화도는 여전히 규칙적인 패턴을 그렸는데

큰 형부는 3월 19일 4시 43분이라 말했다.


나는 산소포화도가 여전히 패턴을 그리는 것을 보고

엄마의 가슴이 아직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엄마가 아직 살아계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인공호흡기가 아직 동작하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몇 분 후 셋째 언니가 도착했고.

못다 한 말을 전하고.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여전히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

엄마 얼굴과 발. 몸은 여전히 따뜻했다.


잠시 밖에서 대기하고

엄마가 나왔다.

2월 8일 저녁 대화를 나누며 식사도 하셨던 엄마가 갑작스런 호흡부전으로 중환자실로 어가신 후

3월 19일 새벽 사망진단서를 받고 나오셨다.


안치실까지 같이 가도 된다는 직원의 말에

엄마와 나와 셋째 언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급차를 타고 안치실로 갔다.

엄마는 그때까지도 따뜻했다.

그냥 잠든 거 같았던 엄마.


준비되지 않았던 영정 사진을 찾던 그날 새벽

겪어보지 못했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장례절차들


천주교식 장례를 치르면서 감사했던 순간들.

엄마 가시는 길

더없이 아름답길 바랐던 마음.

화환 하나하나가 엄마 가시는 길 밝혀주는 등불 같았고

조문 인사 하나하나

마음과 슬픔과 애도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또렷이 박혔다.


감사했고,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애도와 슬픔이

그대로 와닿았다.


지난날 들려왔던

모친상과 부친상.. 그 부고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뭘 몰랐는지

무엇을 지나치고 헤아리지 못했는지 알게 되던 시간이기도 했다.


핏줄로 통해있던 나의 뿌리이고

내 인생 전체를 감싸고 있던 엄마가

이제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이전달에도 나와 얘기를 주고받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우리 엄마.




49일 오늘 비 온다는 소식에

48일째인 어제 우리 가족은 모여 엄마께 다녀왔다.


49일 탈상이라는 오늘.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슬픔이 하루를 가득 채운다.

엄마가 울까 싶어 할머니 얘기를 잘 꺼내진 않던 강이도 오늘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운다.


할머니 사랑이라고는 외할머니 사랑밖에는 모르는 아이들이니 오래오래 기억하길.

할머니 구수했던 손길.

따뜻했던 할머니 품과 말씀.

내공이 다르다던 할머니 음식들.

따뜻한 사랑을 오래오래 기억하길.


49일.

엄마의 부재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때.


하루하루 엄마가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아무렇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울컥울컥 부재를 알리는 날들

그리움이 커지는 날들

형식적으로 탈상을 하지만

영원히 내 안에 있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




5월 7일 12시.50일째

엄마.

오늘 엄마 친구분들 모시고

큰언니와 함께 점심을 대접했어요.

엄마가 1월에도 친구분들과 함께 하셨다던 집에서요.

친구분들께선 엄마를 누구 엄마가 아닌 레지나로 부르시고, 가장 막내인 엄마를 그리워 하셨어요.

이런저런 말씀도 드리고 해야하는데

엄마가 참 좋아하셨던 분들.

참 곱고 점잖으신 친구분들 뵈면서

그자리에 엄마가 계셨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울컥울컥 울음이 나와서

그저 감사하다고.

이 모임이 엄마 낙이셨다고.

너무 좋아하시고 말씀 많이 하셨었다고.

드리고 싶었던 인사만 겨우 전한거 같아요.


천국에 계신 우리 엄마.

모두가 엄마를 그리워 해요.

아빠는 열심히 성당에 다니시고

엄마가 가셨던 길을 따르시며

마음을 다듬고 계세요.

무신론자라 여겼던 둘째 언니도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교리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제 저는 제 가족들을 데리고 셋째 언니가 다니는 성당으로 가려고해요.

우리 가족을 이끌고 가신 엄마

그 축복이 천국에 계신 엄마에게 더해지길 기도해요.


엄마.

집은 전체 인테리어를 시작했어요.

깨끗하고 환한 집에서

아빠의 정갈하고 안정된 노후를 보내시게 해드리고자 큰언니가 앞장섰어요.

연휴에 시간을 내어 큰언니와 같이 최대한 깨끗하고 단정한 자재들로 골랐으니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이쁜 집이 될거 같아요.


엄마.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가 천국에서 기뻐하시길 바라며

그렇게 50일을 보냈어요.

앞으로도 그럴게에요.


엄마.

천국에서

더없이 행복하시길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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