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각자 엄마의 자리가 있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 우리는 각자 부지런히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외롭진 않았을 거다.
다섯 딸은 각자의 시간마다 엄마를 찾았고
아빠는 언제나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바랐으니.
엄마는 기력이 없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기운을 차리셨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움추러든 몸을 피며 행복하게 기운을 차리셨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겨울은 엄마에게 언제나 유독 힘든 계절이었고, 기다리던 봄이오면 다시 활력을 찾으셨기에
올해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엄마는 다시 기운을 내실 거라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동네 병원에서도 별다른 진단 내용이 없었고,
6개월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받는 정기 검진이 올1월 중순에도 있었고 그 검사에서도 경도 빈혈수치 외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기에
엄마의 복용약들에 빈혈약을 추가 복용하며 추운 계절을 지나 기력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렸다.
그 3주 후.
25년 2월 7일.
기침 없이 발열 증상만으로 폐렴으로 입원한 그날까지도 아니 다음날 저녁 급성호흡부전으로 중환자실로 넘어가 인공호흡기를 삽관한 그 시간전까지도 우리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다.
2월 8일 저녁.
의료진과 함께 엄마 침대를 붙잡고 달려간 중환자실 문이 내 앞에서 닫히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엄마는
나와 이야기했고.
죽을 드셨고.
그 시간 이후
엄마와 대화할 수 없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시간 이후
나는 엄마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눈을 맞추고 엄마 표정을 살피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로젓는 얼굴과 표정 눈을 보며 이야기했을 뿐이다.
엄마의 귀에 대고 했던 말들.
엄마는 그것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는지.
나중에 나중에.
내가 천국에 가면
들어볼 수 있을까.
엄마의 목소리도 표정도 생생하다.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엄마가 어떤 자세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대로 그려졌듯이
지금도 내가 쓴 글에 엄마가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스란히 그려진다.
인공호흡기로 말 못 하는 엄마를 코앞에 두고도
현실 넘어 내 엄마가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엄마는 천사가 되었어도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신 건가.
그야말로 49재 탈상 이후에야
하늘로 가실 건지
그냥 아직
여전히 있는 것 같은 우리 엄마
오늘도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엄마.
사실 아직 어딘가에 계실 거 같은 엄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