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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오여사에 대해
딸다섯 엄마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인 기억은 엄마는 지적이고 글을 잘 쓰는 엄마라는 거다.
엄마는 글을 잘 썼다.
명문 여고 문학 동아리 편집장이셨다지.
엄마는 책도 신문도 많이 보는
어린 내 기억 속에서 이 지역 이 동네에서 보기 드문 지적인 엄마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봤던 어른중 가장 지적이고 깊은 사람이다.
엄마가 중학교 입학을 했을 때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옥편과 만년필을 선물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덕분인지 한자 세대라서 그런지 한자를 참 많이 알았다.
나도 어른이 되면 한자를 잘 알게 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지만, 어른이 한참 지난 지금도 한자는 어렵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 입학 했을 때
나에게 책 두권을 선물하셨고, 선물한 이유를 설명하셨다
- 이은국 '순교자'
: 이제 이면을 볼 나이가 되었다. 보이는 것만이 꼭 진실은 아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 세상은 밝고 어두움이 공존한다. 네가 사는 삶과 다른 삶도 있다는 것 이제 그 세상을 들여다볼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주신 이 책 두권과 엄마의 이유는 지금까지도 너무도 명확히 기억이 난다. 책은 아직 어린 나에게 어둡고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지만, 엄마가 나에게 책을 선물한 그 이유가 사춘기를 막 시작한 나에게 마치 주문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 한국문학 읽으면 읽을수록 펼쳐지는 세계들이 새롭고 어렵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었다.
공부. 책. 피아노 이 세가지가 내 10대를 채웠고, 집에서는 막내이나 집 밖에서는 다소 시리어스한 십대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된 올해
엄마는 데미안을 먼저 읽히라고 하셨다.
우리 애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도입부 싱클레어의 입장을 내 아이가 잘 이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역시 초반부터 깊이 공감하며 너무 재미있어했다.
아이가 데미안을 읽을 무렵이 엄마가 입원하신 후였고, 다 읽었을 때는 엄마는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쓴 첫번째 독서록은 데미안.
아이가 느낀 바가 궁금해 읽어보았다.
아이가 쓴 글은 기특했다.
엄마는 역시 현명했다.
돌아가
엄마가 쓴 글들은
어렵지 않았고 잘 읽혔고 튀거나 막힘없이 잘난 체 없는 자연스럽게 고른 글이었다.
글도 엄마 같았다.
엄마가 남긴 짧은 글들을 본다.
두 달 전에 나눴던 카톡도 본다.
나도 무엇이든 쓰고자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내게 남겨진 엄마의 흔적은 엄마의 글이 대부분이었기에.
엄마가 떠난 지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이다.
25년 1월, 2월, 3월 날짜가 적힌
글.
사진.
을 보면 물이 차오른 솜마냥
내 몸이 물로 차오르는 것 같다.
걷는 곳마다
엄마와 통화하며 나눴던 얘기들이 떠오른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잊혀지면 잊혀지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게 엄마가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엄마는 내가 무얼 하든 나를 믿으라 하셨다.
그 말은 엄마가 나를 믿고 사랑한다는 것 응원한다는 표현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고마워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