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유연성과 경직성에 대하여
이데올로기 브레인 속 인상적 구절을 정리했다.
양극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요즘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책.
우파는 당연히 경직되었다?
정치심리학이 발달하던 초창기부터 우파는 당연히 경직되었다는 가정이 존재했다.
진보주의를 좌파적 세계관과 동일시하는 해석으로서, 이러한 세계관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자유 및 다양성에 관심을 둘 뿐 아니라 자원 분배 및 불우한 소외 계층에 대한 연민, 시민들을 지원하고 사회생활을 평등적으로 조직하는 국가의 역할 등과 관련해 그러한 관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정책을 수반한다
하지만 독단적이고 편협하며 대의명분을 들어 폭력을 저지르려는 진보적이지 않은 좌파가 존재한다. 경직된 교리와 정체성에 열정적으로 집착하는 좌파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진보주의를 논쟁에 대해 열려있는 태도라고 정의한다면 '진보적인 극단주의자'라는 표현은 모순이다.
즉, 진보적이라는 뜻에는 1) 유연하다 2)독단적이다->보수이데올로기로 이어지는 정의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인지적 경직성 vs 당파적 정체성
매우 진보적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사람은 경직된 정체성을 가진 집단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일 수도 오히려 매우 독단적인 좌파일 수도 있다. 후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파적 이데올로기와 이어지기에 모순적이다. 진보주의라는 범주에서 이데올로기적 즉, 인지적 경직성과 당파적 정체성은 얽키고 섥혀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
극우와 극좌는 인지적으로 서로 비슷했다. 두 극단 모두 중립적이고 정치와 관계없는 상황에서도 머릿속의 도식 체계를 새롭게 적응시키고, 새로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극단주의가 가진 이러한 한경직성은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결국 가장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는 오래된 '말발굽 이론'으로 우리를 데려다 높는다. 편협성과 경직성이라는 측면에서 극좌와 극우가 비슷하다는 이론이다.
가장 유연한 사람은 좌파로 기울어지는 초당파적 성향을 가진다. 극단주의의 경직설 가설은 우파의 경직성 가설과 적대하지 않고 서로 양립할 수 있다. 심리 측면으로 가장 유연하게 떨어지는 사람들은 당파와 관련없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성향을 지닌다. 반면에 가장 유연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기존 정당에 지나치게 흡수되는 데 저항하면서 약간 좌파 쪽으로 기운 초당파적 성향을 지닌다.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성향이 높은 사람, 다시 말해 집단을 위해 기꺼이 죽겠다고 답한 사람들은 인지적 유연성 테스트에서 좀 더 경직성을 띠었다는 것이다. 인지적 경직성은 개인이 자신을 희생하도록 이끄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인지적 유연성은 이 희생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희생을 하겠다는 결정에 대한 확신을 가질수록 그 사람은 인지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즉, 누군가는 순교라고 칭하고 누군가는 이타주의라고 말하는 자기희생의 신념이 유독 인지적 경직성과 연결되어있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수:감각의 회복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이미지나 아이디어가 가진 의미에 대한 강한 선입견이 있는 그대로의 인식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해석한다는 것은 빈곤해지는 것이고, 의미라는 그림자로 이뤄진 세계를 쌓아 올리고자 실제 세계를 고갈시키는 과정이다. 종교적인 것도 마찬가지로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려 들면 모든 지각경험은 그 교리에 맞아떨어지는 의미에 종속된다.
이러한 억압적인 해석 행위에서 벗어나려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직접적인 감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손택은 이렇게 제안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해석보다는 신체적 교류에, 논리보다는 성애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지각을 특정한 구조에 가두는 해석에 의해 검열되지 않은채 우리의 몸, 물질성, 여과되지 않은 그대로의 감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감각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수인 셈이다.
알 수 없는 것들을 단단하게 껴안기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개인의 특성과 선택은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다양한 대안 이데올로기가 제공되고 여러삶의 방식이 가능한 곳이라면, 심리적 성향은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행동을 예측하는 강력한 지표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의 성격이나 인지적 성향, 생리적 반응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사람들이 유연한 사고를 하도록 장려하는 철학을 지지할지, 아니면 비판적 사고를 억누르는 이데올로기를 지지할지에 영향을 준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중 일부는 이데올로기 체계에 취약했다. 반면 일부는 이데올로기에 쉽게 유혹당하지 않는 심리적, 생물학적 특성이 있었다.
꼭 전통적 개념의 예술만이 유연성을 체화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이것을 작가 롤라 올루페미는 '다르게 하기, 알 수 없는 것들을 단단하게 껴안기'라고 표현했다. 예술만이 아닌 모든 영역에서 다층적 관점과 조화를 이루는 창의성을 연습하는게 가능하다.
마지막 실험
방에서 나와 자유롭게 걸어보라, 언제든 원하면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주어진 비이성적인 규칙에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는 여러분이 나가는 길에 경직된 태도를 버렸으면 한다. 또 충분히 시간을 가진 채 압박감이나 어디에 얽매인 감각도 없고, 어깨위에 짊어진 조상이나 따라야 할 할의식도 없고, 여루분을 짓눌러 움직임을 방해하는 기대도 없기 바란다.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모든 것, 의무나 외부에서 부과되는 강요, 불편한 특정 방식대로 행동하라는 지시에 의문을 품었으면 한다.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도 그것이 이몸을 일으켜 걸어가는 동작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또, 여러분이 규칙과 지시를 를거부하고, 적법하지 않은 권위에 저항하며, 개인적이고 진정성 있는 자율르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