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꼴라 기르기와 어버이날

우리를 키우신 모든 부모님께,

by 유느야


6월 초여름 녹음이 진 울주군 문수산 아래 집을 짓고 사는 60대 부부가 있다. 그들은 자연의 위대함을 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속 주인공 나무는 온 몸을 바쳐 사랑을 준다. 나무의 사랑은 무한하기에 지구별에 사는 포유류에 불과한 인간은 차마 따라 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문수산 아래의 60대 남성은 산 밑에 집을 지었고, 여성은 집안을 식물로 가득 채운다. 요즘 가장 큰 행복은 식물 기르기라며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초록으로 물들였다. 초록의 생명은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의 기쁨을 안다.



막내 딸과 갔던 유럽여행에서 맛있게 먹었던 루꼴라를 기르기로 결정했다. 처음 묘종을 들여온 날은 꽤나 바빴다. 테라스에 볕이 잘드는 곳을 고르는 것부터 분갈이, 설레는 마음으로 찍은 인증샷까지 몸도 마음도 온 신경이 테라스에 나가있다.


KakaoTalk_20250511_184041766.jpg 울산 집에서 기르는 루꼴라


하지만 루꼴라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조급한 마음에 성실히 물을 주고 좋은 햇볕에 둔다고 성장의 속도가 빨라지지는 않는다.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돋아난 입사귀가 마음을 간지럽힌다. 그녀는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식을 셋이나 길렀지만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갓 태어나 거실 바닥을 기던 핏덩이들은 쉽게 기억나지만 십대의 아이들은 빠르게 지나간 탓인지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은 빨리 흘러 둘째가 핏덩이를 낳았다. 자식이 낳은 또 다른 자식이 집에 올때면 다시 온 신경이 그에게로 향한다. 그를 등에 업으며 그녀는 30년전 등에 붙어있던 자식들이 떠오른다. 이 녀석도 한동안은 그의 엄마의 온 신경을 빼앗으며 귀찮게 안기겠지만 어느 순간에 훌쩍커버릴 것이다. 생애 초기에 모든 부모들의 희생이 우리를 키운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 묵묵히 기다려 준 것이 그들을 키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것 또한 사랑의 형태라는 것을 여성은 루꼴라에 물을 주며 생각한다.



막내에게 받은 카네이션을 화병에 옮길 때는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는 막내가 생각난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조언이 많지만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응원하고 기다리다 보며 다시 막내에게도 새싹이 자라나 여성을 간지럽힐 것을 알기에 묻고 싶던 말을 삼켰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엔 물도 많이 주면 탈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준다. 막내에게 그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카네이션에 물을 준다.



신촌 오거리 한 골목에 위치한 스터디카페에 앉아 책을 보는 여성의 마음이 갑자기 따듯해진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엄마 명의의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한다. 이번주에 한 번도 안부를 묻지 못한 그녀의 엄마에게 커피를 마시며 전화를 건다. "저녁 뭐 먹었어?" 진부한 안부 전화이지만 두 사람 모두 정성껏 대답하며 전화를 끊는다. 20대의 딸은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지만, 그녀가 자라며 겪은 모든 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란 걸 깨닫지 못한다. 그녀는 갓 태어난 조카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떠올리는 것 만으로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데, 부모가 그 시절 나에게 준 기억 덕분인 걸 그녀는 깨달을 수 있을까.



그 시대에 결핍된 것이 유행한다는데, 사랑이 결핍된 시대에 사랑은 가장 잘팔리는 이야기다.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는 소설 속에나 가능한 이야기라며 젊은이들은 입이 마르도록 떠든다. 그들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스스로의 인생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그들 중 대부분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 무한한 사랑은 소설 속에나 가능한 말이라며 그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은 쉬웠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편지 한 장 쓰지 못하고 이 글을 쓰는 나도 똑같다. 부모님의 사랑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나도 그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이 문수산 아래 나의 나무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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