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구절 정리
그녀는 말한 적이 있다. "시간에 속지 말고 역사-특히 지성사-가 선형적이라고 상상하지 마세요"
그녀는 고결하고 자족적이고 유럽적이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전기나 역사책은 말할 할것도 없고 소설에서도 어떤 인물이 형용사 세 개로 줄어들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는 늘 불신하세요"
나는 엘리자베스 핀치만큼 자기 연민이 없는 는사람은 안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 연민을 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로맨스에서의 실망, 외로움, 친구들의 배신, 심지어 공적 망신 주기를 경험했지만 그런 것들을 차분하고 무관심하게 마주했다. 그녀의 스토아 철학은 그녀 존재의 핵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실패가 성고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깨끗한 패배자보다 지고 나서 뒤끝이 이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하고 싶네요, 나아가서 배교자가 늘 진실한 신자보다, 거룩한 순교자보다 흥미롭습니다. "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자철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라가 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르낭은 나라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노는 아래로 흐른다.
-자기 연민의 시대에 스토아 철학자가 되는 것은 쌀쌀맞다. 아니 냉담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런 것이 수십 년 동안 오늘의 만트라 역할을 해왔다. 안이한 진술이다. 오히려 개인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이다.
스토아는 T 에피쿠로스는 F이려나?
부모는 리즈가 더 관습적이기를, 그리고 아들인 나는 더 진취적이기를 바랐다고 봐요.
사람들은 유전적 특질에서, 부모의 행동에서, 물려받은 것에서, 기후에서, 식단에서, 지리에서, 자궁에서 보낸 시간에서, 양육에서 모든 게 결정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방에서 코끼리가 울부짖는 것을 듣지 못한다. 역사의 울음. 듣는다 해도 그들은 역사가 자신의 인생 또는 부모의 인생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침략, 집단 학살, 메뚜기 떼의 창궐, 그보다 뒤로 거슬러 간 역사는 모두 비활성 상태라고, 현재와 아무런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히틀러와 스탈린을 보는 대신 콘스탄티누스와 테오도시우스를 볼 것을 제안한다. 누군가 가존경할 사람을 원한다면 율리아누스를 보라. 신문들이 "불굴의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자.
모든 종교는 무지하고 오도되고 우상을 숭배하는 농민보다 배교자를 훨씬 미워한다.
뒤늦게 나는 제프처럼 EF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그녀에게서 다른 것을 을원했던 사람들도 있다고 인정할 수 있었따. 하지만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다시피 피그게 그녀를 좀 더 나만의 존재로 만들어주었기 떄문이다.
아마도 내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꺠달았으니 멈출 떄가 되었다.
다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점심 테이블에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가요?" 그녀가 열띤 표정으로 묻는다. "실망스럽나요?" 마치 다른 모든 든것에 관해서도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것 같다. 인생, 하느님, 날씨, 정부, 죽음, 사랑, 샌드위치, 미완성 걸작의 존재.
그녀 자신은 어떤 것도 우에 맡기는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내 생각으로는, 나에게 자신의 문학적 찌꺼기에 에대한 책임을 넘김으로써 재미있는 방식으로 그 일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쓴 것을 서랍에 넣어두고, 어쩌면 그 옆에 EF의 공책들도 놓아둘 것이다.
이건 정당할 것이다. 어떤 일은 은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이 일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따라서 내가 자유와 행복을 얻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아이러니 섞인 웃음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