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구조개혁이 명암 갈라
유럽 빅3 저성장, 나라빛 이중고
연금 손 못댄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
피그스는 노동시장 유연화 등 뼈 깎는 노력으로 성장 궤도 올라
글로벌 신용 평가사 S&P가 프랑스의 국가 시욘용 등급을 AA-에서 A+로 10월 17일 강등했다. 프랑스가 재정 지출을 줄이려 추진하던 연금 개혁을 보류하기로 하자, 재정과 나랏빛 관리에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취지로 이런 결정을 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경제 빅3국은 최근 저성장과 나랏빛 증가라는 '이중고'에 빠져 있다. 영국 경제사학자 니얼퍼거슨은 이들의 침체 이유를 "비국은 우리의 안보를, 러시아는 에너지를, 중국은 수출 시장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젠 모두 사라졌다"고 정리했다.
우선 독일은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가 끊기면서 역성장 늪에 빠졌다. 23년엔 -0.3%, 작년 -0.2% 성장에 그칠 전방이다. 프랑스, 영국도 올해 각각 0.7%, 1.3% 성장 전망이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 연 2~3% 성장했는데, 성장 속도가 반 토막 났다.
유럽빅3 침체의 뿌리엔 '중등기술의 함정'이 있다. 유럽 기업들은 자동차, 공업 기계, 화학, 통신 등 중등 기술에 집중하다가, IT, 소프트웨어, 바이오 등 첨단 산업 경쟁력은 잃었다는 것이다. 숨은 비용도 드러나고 있다. 유럽 빅3는 2차 대전 후 미국에 안보를 맡기고 방위비를 줄여 복지를 늘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방위비를 더 쓰라고 압박하고 있다.
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느는데 방위비 등 새로 쓸 돈이 커지면서 나랏빛은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2010년 초 남유럽 재정 위기의 진앙이던 (PIIGS)는 부활하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 개혁으로 성장 궤도에 돌아섰고, 나랏빚은 줄이고 있다. 0%대 저성장의 덫에 갇혀 나랏빚 급증 문턱에 서 있는 한국은 '개혁을 미룬 비용'을 치르고 있는 유럽 빅3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복지에 중독돼 미래 투자 외면... 공짜 안보, 저금리 파티
멈춰선 '유럽의 3대 기관차'
프, 긴축 반대로 연일 대규모 시위
독, 제조업 고용 1년 새 11만명 줄고
영, 외국인 투자 5년 새 37% 감소
"모든 것을 차단하라!" 프랑스 파리는 지난달 내내 최루탄 연기로 자욱했다. 마크롱 정부의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한 긴축 예산안에 분노한 시민 수만 명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버스에 불을 질렀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떄에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월평균 제조업 일자리가 직전 1년간 대비 11만 4000개가 줄었다는 통계가 발표된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산업인 자동차 부문에서만 절반에 에가까운 5만15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영국도 암울하다. 영국 제조업 생산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영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 투자는 2020년 브렉시트 이후 37%나 줄었다.
한대 유럽의 모범생으로 불렸던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빅3 나라들이 경제 실패에 신음하고 있다. 투자, 고용 등 핵심 경제 지표는 부진을 거듭하고 성장률은 정체되거나 뒷걸음질하고 있다. 유럽 빅3가 이렇듯 동시에 무너진 배경에는 수십 년간 쌓인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중 핵심은 '높은 복지-낮은 국방비-초저금리'라는 황금 삼각형 경제 모델이 붕괴 됐다는 데 있다.
복지병에 국방비 청구서, 금리 역습까지
유럽 경제 빅3는 복지에 막대한 돈을 쓰는 나라들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기준 연금, 의료, 실업급여, 공공 주거 지원 등 공공 사회보장 지출이 GDP의 30.7%로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독일과 영국도 이 비율이 각각 27.9%, 23%에 달한다. 세나라 모두 OECD 평균(21.2%)를 훌쩍 넘는다. 김정식 교수는 "세 나라는 경기 대응이나 미래 투자에 쓸 돈이 복지성 의무 지출에 다 묶여 있다"며 재정의 경직성이 극에 달한 상태 라고말했다.
세 나라가 복지에 취해 있는 사이 미국에 기댔던 안보 보무임승차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나토 방위비의 70% 이상을 부담하는 평화배당을 누리며 최소한의 국방비만 써왔다. 하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1%대에 그치는 유럽에 이 비율을 5%까지 올리라고 요구했다. 결국 나토 회원국은 국방비를 향후 10년간 5%까지 높이기로 했다. 더는 국방비를 아껴 복지 지출을 늘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투자 멈춘 유럽 빅3
초저금리 효과가 사라지 ㄴ것도 세 나라에 직격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중앙은행은 2014년 6월~2022년 7월 8년간 재정 위기, 코로나 위기 등을 돈 풀기로 버텨 내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다. 앞서 2012년 7월부터는 제로 금리였다.
이 기간 유럽 럽각국은 값싼 자금으로 재정 적자를 메우고 복지도 확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짜 돈' 파티는 막을 내렸다. ECB는 2022년 7월 기준금리를 0.5%로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23년 9월까지 금리를 4.5%까지 높였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였다. 금리가 치솟자 독일의 국채 이자 지출은 2021년 40억유로에서 지난해 400억 유로로 10배 폭증했다. 영국은 2022년 4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국채 이자로만 1160억파운드를 지출해 같은 기간 교육 예산을 넘어섰다. 프랑스도 작년 국채 이자가 국방 예산을 추월했다.
초저금리의 퇴장은 정부와 기업의 투자 의지를 동시에 꺾었다. 재정 부담이 커진 정부는 긴축으로 돌아섰고, 기업은 자금 조달 비용 급증에 투자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설비 투자 증가율이 G7 중 최하위로 떨어졌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복지의 무게, 안보의 청구서, 금리의 역습이라는 삼각 파도가 유럽 빅3를 집어 삼기고 있다"고 말했다.
독, 프, 영 정부 부채 비율, 2년 뒤엔 피그스보다 나빠진다.
영, 포르투갈은 이미 2년 전 역전
독,프,영이 저성장과 포퓰리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2년 뒤에는 재정 상황이 2010년대 초 남유럽 재정 위기의 의진원지였던 피그스보다도 나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IMF가 지난 발표한 재정 저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말 독, 프, 영 3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평균은 94.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전인 2015년 말의 84.7%보다 10.1% 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반면 피그스 국가들의 평균 정부 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124.3%에서 101.6%로 개선됐다. 개혁과 긴축을 통해 재정 체질을 바꿔내 결과다. IMF는 2년 뒤인 2027년에는 독일, 프랑스, 영국의 평균 정부 부채 비율이 98.4%로 치솟아, 피그스 평균치(97.%)를 웃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과 포르투갈의 정부 부채 비율이 이미 2년 전 역전된 것도 상징적이다. 영국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재정 지출을 대거 늘리면서 2023년 말 정부 부채 비율이 100.4%까지 상승했다. 반면 포르투갈을 관고아, 부동산 분야 회복세 등에 힘입어 같은 해 부채 비율을 97.7%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부채 비율은 2030년 75.8%까지 낮추는 데 성공해다. 포르투갈의 부채 비율은 2030년 75.8%까지 떨어져 한때 피그스 국가들이 '재정매파, 긴축주의자'라고 비판해온 독일(74.8%)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유럽 재정 위기의 또 다른 핵심 진앙이었던 그리스의 정부 부채 비율은 2029년 말 G7 평균보다도 낮은 130.2%까지 지떨어질 것으로 IMF는 전망했다.
개혁 결실 거두기 시작한 피그스
관광, 수출 되살아나고 고용 증가 소득세도 내리고 국채 조기 상환
2010년대 유럽 재정 위기는 남유럽 국가들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피그스로 불린 나라들은 당시 막대한 국가 부채, 만성적 재정적자, 구조적 취약성 등으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집중 공격을 받았다. EU와 IMF의 구제금융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처지였다.
15년 동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작년 4분기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0.2%, -0.1% 성장률로 역성장의 늪에 빠진 사이, 포르투갈은 1.5%, 스페인은 0.8% 성장했다. '유럽의 병자'라던 피그스는 유럽의 성장 모델로 바뀌어싿. 전문가들은 "피그스 국가들이 고통스러운 개혁의 대가로 개혁의 배당금을 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 피그스는 구제금융 과정에서 공공 부문 임금과 연금을 삭감하고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는 등 뼈를 깎는 개혁을 단행했다. 관광과 수출 산업이 되살아나면서 2013년 27.8%에 달했던 실업률은 올해 상반기 8.9%를 기록하며 12년 연속 개선세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도 정규직 해고 규제를 완화하고 공무원 감축, 공공 부문임금 삭감, 연금 축소 같은 개혁을 밀어붙였다. 특히 아일랜드는 노동 개혁과 감세에 힘입어 다국적 IT, 제약 기업이 몰려들며 고용과 세수가 동시에 확대 됐다.
세제 개혁도 가세했다. 위기 초기엔 법인세 등 증세로 급한 불을 껐지만, 경제가 안정세를 찾자 다시 감세로 방향을 틀었다. 스페인은 경기 회복 이후 소득세, 법인세를 인하했다. 저율 법인세를 고수해 온 아일랜드는 법인세수가 늘며 초가 세수가 생기자 국채 조기 상환에 썼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교수는 "몸이 아파야 건강을 챙기듯 피그스 국가들은 위기를 계기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 얘기 아니다" 노동개혁 없이 재정 늘리는 이재명 정부에 경고등
IMF "재정 건전화 노력 동반돼야"
'높은 복지-낮은 국방비-초저금리'라는 황금 삼각형 모델 붕괴로 신음하는 독, 프, 영 구조적 위기는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8월 올해보다 55조원 가까이 많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확장재정기조를 공식화하면서 나랏빚은 빠른 속도로 불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안보 우산 무임승차에 대한 압박에 따른 국방예산을 늘려야 함에 따라 부담도 늘어나게 된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 하락 속도는 저성장으로 신음하는 독, 프, 영보다 빠르다.
저성장에 바랏빚 증가까지 겹치는 고통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