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18

비오는 날에는 부침개죠!

by 만보

비오는 날에는 부침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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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환대


게르촌에 도착하기 전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는 우리가 짐을 내릴 즈음에는 제법 굵어졌다. 흙냄새가 묻은 빗방울이 초원의 공기와 섞이며 은근히 가슴을 적셔왔다. 게르 주인은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고, 젊은이들은 어눌하지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왔다. 젊은이들이 게르 주인장의 자녀인지, 아니면 일손을 거드는 일꾼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낯선 땅에서 듣는 그 한마디 인사는 제법 따뜻하게 다가왔다.


가이드 불가에게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주니 고맙네요”

라고 말하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몽골 사람들에게는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좋은 징조라고 말한다. 비 오는 날 손님이 찾아오면 행운이 함께 들어온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풀을 자라게 하는 비는 가축을 살찌우고, 건조한 초원을 적셔주기에 언제나 고맙게 여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말이었다.


게르 안에 들어와 짐을 풀고 나서 덕종씨가 무심히 흘리듯,

“이런 날에는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이면 딱인데…”

본능적으로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감각 세포가 살아났다. 비오는 날이면 흔히 하던 말이었지만, 먼 몽골 초원에서 들으니 새삼 낯설고도 정겨웠다.

그러자 기후씨가 받아쳤다.

“서울 가서 뒷풀이로 하시죠.”

모두 합창하듯이

“그럽시다.”


기억 속의 부침개


어느새, 나의 기억은, 고비사막 오프로드 여행 때, 한 장면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그날도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그때 동행했던 분이 똑같이 말했었다.

“비 오는 날은 역시 부침개죠.”

그 말에 또 옆에 있던 다른 분이 대뜸 나섰다.

“제가 한번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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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다들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초원 한가운데, 부침개라니. 하지만 이내 모두는 그의 능청스러운 말을 믿어야 했다. 가지고 온 참치캔 두어 개를 따고, 캔 안의 기름을 후라이팬에 부었다, 감자 몇 개를 잘게 썰어 냄비에 넣고 빈병으로 찧고 으깨었다. 이것저것 야채를 넣고 반죽을 만들더니, 참치캔 기름과 함께 달거진 후라이팬에 올렸다. 낯선 조리법에 처 음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게르 안으로 퍼져 나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우리를 웃음 짓게 했다. 기름이 지글거리는 냄새와 소리, 빗방울이 게르를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가 하나로 섞여 들었다. 초원 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비 오는 날의 부침개’를, 그렇게 맛 보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여행에서는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덕종씨나 영우씨에게 지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괜히 부담이나 되지 않을까 싶었다. 때로는 기억은 나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축제가 되는 편이 더 깊다. 빗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구름 사이로 커다란 달이 떠올랐다. 젖은 풀잎들이 달빛에 반짝이며 은빛 물결을 이루었다. 빗님이 떠난 자리, 그 빈자리를 달님이 가만히 채워주고 있었다.


여행이란 이러한 작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게르 안에서 나눈 소소한 대화, 빗속에서 떠오른 부침개 추억, 몸으로 느끼는 온기. 이런 자잘한 조각들이 모여 한 편의 긴 이야기로 남는 것이 아닐까. 훗날, 누군가가 “비 오는 날엔 뭐가 생각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르 지붕 위로 떨어지던 빗소리와, 감자를 으깨던 소리, 참치캔 기름이 지글거리는 고소한 냄새, 그리고 그때 웃던 사람들의 얼굴이요.”


- 보슬비 내리던 날, 어느 호수에 잠든 G.H.와 Y.I.가 생각나서 이 글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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