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17

초원의 신전, 게르의 신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다.

by 만보

초원의 신전, 게르의 신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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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에서의 아침


오전이 느긋한 하루였다. 말을 타려면 한참 후에나 출발한다고 기후씨가 모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믹스커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영우씨가 밖으로 나가면서 게르 문에 머리를 부딪히는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감싸며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고 덕종씨는 걱정이 되는지 한마디 거든다.

“문에다 머리조심, 크게 써 놓아야겠어요.”

그리고 곧바로 우스갯소리로,

“쾅 소리에 텡그리 신이 놀라셨겠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영우씨가 공부를 많이 하고 왔네요.”

그러자 기후씨는 씽긋 웃는 미소가 보였다.


나 또한 어젯밤, 게르 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소독약을 바른 기억이 떠올랐다. 게르의 불편함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낯선 집인 것만은 부인하기는 어렵다. 게르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스며든 방식이며, 유목민들에게는 하나의 기호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하늘의 창, 불의 여신이 머무는 자리


세 번째 오프로드 여행자로서 게르를 경험했지만, 어떤 때는 실수와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한다. 기둥을 손으로 잡으면 안되고, 문지방 밟으면 안되고, 두 개 기둥 사이로 다니면 안되고, 난로에 쓰레기를 태우면 안되는 여러 가지 금지 사항도 잠시 잊을 때도 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초원 위에 게르는 멀리서 보면 단순한 하얀색 천막일 뿐이다. 그러나 잠들기 전, 들짐승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고, 구멍 뚫린 중앙 천장을 바라볼 때는 하룻밤 묵는 숙박이 아니라, 작은 우주를 경험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게르의 둥근 지붕 중앙에는 하늘 향해 뚫린 원형의 창이 있다. 연기가 빠져나가는 길이면서, 하늘과 연결된 문이다. 유목민들에게 이 구멍은 사소한 통풍구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신 ‘텡그리’와 연결된 길이며, 인간이 우주와 소통하는 하나의 축이다. 밤에 누워 둥근 창을 올려다보면, 별빛은 그 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마치 하늘과 땅이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이어져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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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의 중심에는 불이 있다. 화덕에서 불꽃이 타오를 때, 그 불은 추위를 막는 도구로만 여기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몽골 신화에서 불은 신성하다. 불에는 불의 여신 ‘오드 아나’가 깃들어 있으며, 불을 지키는 일은 곧 신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행위다. 여행자로서 불 앞에 앉았을 때, 따뜻함이란 온기도 있지만, 아주 오래되고 절제된 질서 안으로 들어온 듯한 묘한 경건함을 느낀다. 장작이 타며 내는 따딱 소리, 연기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은 조상과 신들에게 전해지는 기도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주말 산골 오두막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어놓고 불멍을 할 때처럼.


게르 안은 질서의 공간이다. 남쪽은 문, 북쪽은 신성한 제단과 조상을 위한 자리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 손님을 앉히는 것은 외부로부터 온 존재를 태양처럼 환영한다는 의미다. 서쪽의 주인은 가문의 뿌리와 권위를 상징했고, 북쪽은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성역이다. 게르 안은 우주의 모형안으로 들어온 듯한 감각이다. 이 구분은 관습처럼 이어온 생활의 편리함도 있지만, 세계를 나누는 신화적 질서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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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신전, 신화 속의 현재형


몽골 유목민들의 삶은 늘 이동을 전제로 한다. 계절의 바람과 가축의 발걸음을 따라 그들은 게르를 접고, 새로운 풀이 있는 곳에서 다시 세운다. 그들이 옮기는 것은 단출한 집이기보다, 이동하는 신전이다. 게르 한 채를 세우면, 그 안에서 하늘과 땅, 인간과 조상이 다시 연결된다. 삶은 늘 유동적이지만, 게르라는 작은 우주는 그 유동 속에서도 질서와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의 삶을 잠시 지켜보면서 정주에 길들여진 내 삶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감각을 조심스럽게 알게 된다. ‘움직이지만 결코 뿌리 뽑히지 않는다.’ 이것이 게르가 지닌 신화적 삶의 방식이 아닐는지.


오프로드 여행을 하면서 불편함은 많았다. 외부의 조잡한 화장실, 며칠 동안 감지 못한 머리, 생수병 하나로 겨우 하는 세수와 양치질.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느낀 것은 불편 그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과 가까워졌다는 증거였음이다. 불편함은 인간을 다시 원초적인 감각으로 되돌려 놓았고, 그 속에서 게르의 신화적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불편함을 알면서도 이 길 없는 길을 여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게르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 듯했다.


“게르는 단출한 집이 아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이며, 불과 바람과 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그릇이다. 작은 우주이며, 이동하는 신전이다.”


초원의 바람은 늘 그랬듯 묵묵히 흘러갔고, 그 바람 속에서 게르가 품은 신화적 의미를 느낀다.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삶은 불안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정주민보다도 깊은 세계관이 숨어있음을, 늘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꽃을 지키며, 게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인간과 신,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삶이었음을. 게르는 단지 여행자의 낯선 경험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몽골 신화의 현재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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