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말타기, 그리고 인연의 시작
버킷리스트는 마음속에 늘 간직하면서도, 쉽게 손에 닿지 않는 단어처럼 느꼈었다. 여러 버킷리스트 중에서도 ‘초원에서 말타기’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신혼여행 때 제주도에서 잠시 말고삐를 잡히고 사진 한 장 남긴 것이 전부였다. 제대로 말을 타 본 기억은 없었다. 언젠가 초원의 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버킷리스트를 현실로 끌어내 준 사람이 바로 기후씨였다. 평창동계올림픽 준비하면서 조직위원회 파견 근무하던 시절, 찬 바람 불던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꺼내는 분위기였다. 초원에서 마음껏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은하수를 촬영하는 것,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막연한 소망이었는데, 기후씨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제가 몽골 여행을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말은 마음껏 타게 해 드릴게요.”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단체여행이 아닌 자유로운 여행을 기후씨는 흔쾌히 본인이 직접 안내하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17년 홉스골, 그리고 2018년 고비사막. 오프로드 차량의 거친 흔들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적막, 밤하늘에 가득 쏟아지던 광활한 은하수.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을 타고 달리던 순간들이 내 가슴 깊이, 마치 도장 찍듯이 새겨졌다.
초원 위에서 처음 말 안장에 올랐을 때, 꽤 높아 보였고 살짝 무섭기도 했다. 말이 조금만 움직여도 몸은 휘청거렸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말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니, 말은 내 뜻을 알아듣는 듯했다. ‘츄츄’ 하면 움직였고, 고삐를 잡아당기며 ‘워워’ 하면 섰다. 오른쪽 왼쪽으로 고삐를 당기면 그대로 움직였다. 그게 전부였다. 동작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두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농담 삼아 내 엉덩이에 몽골반점이 있느냐, 처음 치고는 제법 잘 탄다고 이야기해 주던 말 주인의 기억도 생생하다. 말 주인에게 고삐를 붙잡히지 않고 직접 말을 몰며 ‘츄츄’ 하고 외치자, 말은 천천히 걸어갔다. 두 번째 여행 말타기에서는 걷는 것보다 빠른 속보로 달렸다. 기후씨도 옆에서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바람을 안고 달렸다. 그 순간 내 안의 질주 본능이 깨어나는 듯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스며들었고, 온몸은 자유로움과 해방감으로 물들었다.
몽골의 아이들은 말을 자유롭게 타고 달린다. 말과 하나 되어 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늘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들처럼 자유롭게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제대로 말을 타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여행객들이 많아 말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겨우 빌린 말도 안전 문제 때문인지 고삐를 잡히고 걸어가는 정도로만 허락 되었다. 그마저도 한 시간이 전부였다.
다음날,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말을 타지 않는 대신에, 동행들이 말을 타는 모습을 드론으로 사진을 담았다. 말을 타는 체험만큼이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특별했기 때문이다. 강물을 건너는 말과 사람들의 모습을 드론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면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말 위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는 쉽게 잊을 수 없다. 바람결이 온몸으로 파고들던 순간, 가슴속이 시원하게 뚫리던 상쾌함, 달려보고 싶은 본능,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듯한 자유와 해방감.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깊고도 따스한 숨결을 불어 넣어 준 선물 같았다.
기후씨와 인연도 여행 동행자에서 내 삶의 중요한 장면들을 함께 만들어 준 동반자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몽골의 초원에서 시작된 인연이, 정년퇴직을 마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 새삼 감사하다. 시간이 흘러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남아, 새로운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말타기는 내 버킷리스트 하나였지만, 때로는 심장을 뛰게 하는 촉진제가 되기도 했다. 두려움과 설렘, 아쉬움과 감사, 그리고 자유와 해방감. 모든 감정이 말을 통해, 오프로드 여행을 통해, 인연을 통해, 내게로 다가왔다.
또다시 초원에 설 날이 올 것이다. 그날에도 말을 타고 달리며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것이다. 혹은 순록을 타고 겨울 호수를 달릴 수도 있다. 그리고 드론을 비행하며 하얀 겨울의 풍경을 담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여전히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은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그리고 감정들이 결국 나를 있게 한다. 말 위에서 느낀 바람결의 자유로움처럼, 2막 인생길에 들어선 두려움보다는 설렘으로, 억눌림보다는 해방감으로 채워가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