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25

어워 앞에서 멈춘 시간

by 만보

어워 앞에서 멈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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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신성한 풍경


오프로드 여행을 하면서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풍경이 있다. 바로 ‘어워’다. 처음 보았을 때는 투박한 돌무더기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평범한 돌무더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곳에는 나무가 세워져 있기도 하고, 천조각이 바람에 나부끼기도 한다. 때로는 다듬어진 돌에 글자가 새겨져 있거나, 운전대 커버 같은 생활의 흔적이 걸려 있다. 심지어 짐승의 뼈까지 놓여 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그 풍경이 나를 묵묵히 멈추게 한다.


어워는 우리나라 장승이나 솟대, 돌탑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 입구에 세워져 악귀를 막고, 사람들의 안녕을 빌던 장승처럼,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당처럼, 어워도 길 위에 서 있다. 언덕 위, 갈림길, 길모퉁이. 어디에 있든지 어워는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춤을 권유한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어워 앞에서 무언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낯선 땅에서 어워는 묘하게도 친숙한 기운을 풍긴다.


몽골 사람들에게 어워는 신성한 공간이라 말한다. 어워는 산신이나 하늘신, 그리고 자연의 정령들에게 제사를 드리던 제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몽골인들은 어워 앞을 지나칠 때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돌을 하나 얹거나, 술을 뿌리거나,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돈다. 그 동작 속에는 하늘과 땅에 여행자의 무사함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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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과 기도의 순간


나 또한 그 오래된 풍습에 따라 어워 주위를 천천히 세 바퀴 돌았다. 왜 시계방향이어야 하는지, 왜 세 번을 돌아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가이드 불가에게 물었을 때도

“옛날부터 그렇게 해 왔어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모호함 속에 오히려 정감이 스며있다. ‘예로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한다.’ 이 단순한 이유가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오게 한 것이리라. 어느 문화든 오래된 풍습은 세세한 이유를 몰라도, 그 자체로 어떠한 힘을 갖는다.


어워를 천천히 돌면서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집사람과 딸들의 무탈한 일상, 그리고 여행의 무사한 마무리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동행한 덕종씨에게

“무슨 생각을 했어요?”

대답은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한 것이다. 국적과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평안을 비는 마음은 같다. 어워는 그런 보편적인 마음을 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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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 속에서도 어워는 초원의 중심처럼, 길 안내자처럼 보였다. 먼지 날리며 달려온 길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었고, 앞으로 가야 할 길 또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길이 없는 길 같지만,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길이 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길을 따라간다. 어워는 그 길 위에서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잠시 멈추어 호흡을 고르게 하고, 앞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어워는 여행자를 위한 기원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이다. 푸른 하늘, 끝없는 대지, 바람과 짐승, 그리고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서 어워는 늘 같은 자리에 서서 그 모든 존재를 바라본다. 어쩌면 어워는 ‘길은 결국 이어가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어워 앞에 서면 마음이 차분해지며 고요해진다. 설명할 수 없는 힘이 그곳에 있다.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중한 이들의 안녕을 빌고, 길 위에서 다시 출발한다. 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목적지는 분명하다. 어워는 그 사실을 매번 일깨워주는 이정표 같은 존재다.


- 아무도 없는 초원의 바람과 함께하는 어워를 생각하면서, 늦은 밤, 이 글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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