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 폭우, 우박, 3종 세트를 한꺼번에 만나다.
오프로드 여행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길 위의 전투와 같다. 지도 위 한 줄의 선으로 표시된 길일지라도, 실제로 마주하면 그 길은 돌발적인 사건과 자연의 변덕, 그리고 사람들의 지혜가 교차하는 살아 있는 무대가 된다. 호르거 분화구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도 그러했다.
호르거 분화구 입구에 도착했을 때, 서편 하늘에는 수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검은 구름이 빠르게 몰려오고, 바람은 평범하지 않은 결을 품고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기후씨는 잠시 하늘을 살피더니 짧지만 단호하게 한마디를 남겼다.
“한 시간 후에 올라가시죠.”
말이 채 끝나자마자, 하늘은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가 옆으로 휘몰아치며 창을 두드렸고, 바람은 분노한 듯 차체를 흔들어댔다. 그러자 운전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차량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모두 의아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덕종씨가,
“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차 방향을 바꾸는 것 같네요.”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한껏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는 왠지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 말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작은 몸부림을 상징하는 듯했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비는 옆으로 누운 채 쏟아졌다. 잠시 후 지붕에서 따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박이었다. 처음엔 박자를 맞추듯 조심스레 내리더니, 이내 망치질하듯 차량 지붕을 두드렸다. 비, 바람, 우박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장면은 마치 자연이 준비한 극적인 연출 무대 같았다.
그 혼란 속에서 운전기사들은 계속해서 차를 움직이며 바람을 피하려 애썼다. 우리는 불안과 호기심 사이에서 그들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한 시간 남짓,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다시금 찾아온 고요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파란색을 되찾았다. 그제야 기사들이 수건을 들고 차를 닦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차를 이리저리 돌린 이유는 세차를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만 보였던 그 행동이, 사실은 자신들의 일터를 지키는 또 하나의 의식이었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기사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었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저런 드러내지 않은 지혜와 수줍은 웃음이 아닐까.
햇살이 보이자 우리는 분화구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에서 마주친 현지인들은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 폭풍 속에서 몸으로 고초를 겪었던 흔적이었다. 그 모습은 조금 전 차 안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바람을 견뎌낸 우리와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자연은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대하지 않으며,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체험을 안겨준다.
드디어 3,000년 전 화산이 폭발해 형성된 분화구에 올라갔다. 말없이 서서 그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증언자이자 대지의 기억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더없이 웅장했다. 분화구의 깊은 곡선과 주위에 흩어진 화산암의 질감은 자연의 위대함을 압축한 한 장의 역사 기록처럼 다가왔다.
호르거 분화구를 오르기 전의 운전기사의 행동은 자연의 변덕스러움 그 앞에서 인간이 발휘하는 지혜와 유머를 함께 경험한 사건이었다. 폭풍 속에서 방향을 바꿔가며 차를 지킨 운전기사들의 모습은, 마치 자연과 대화하는 작은 철학자 같았다. 그리고 비바람이 잦아든 뒤 수건을 들고 차를 닦으며 웃음을 나누던 장면은, 인간이 가진 회복력과 삶의 태도를 상징하는 듯했다.
삶은 오프로드 여정과도 같다. 언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칠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폭풍을 피하는 지혜와, 지나간 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음 아닐까. 자연은 늘 변덕스럽지만, 그 변덕을 통해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지혜를 터득한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지만, 바로 그 작음이 우리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여행길에서, 오늘의 경험처럼 웃음과 겸허함을 기억하며 자연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후기; 이곳 분화구에서 우리나라 유튜버가 사고를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여행 마치고 얼마 후에 뉴스로 접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