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다.
초원은 늘 크고 웅장한 풍경으로 나를 압도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푸른 하늘, 그리고 멀리서 구름 그림자가 드리우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여행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 마음에 오래 남을 장면은 풀밭 사이에 숨어 있던 아주 작은 꽃 한 송이도 있었다.
언덕에서 잠시 멈추고 쉬고 있는데, 기후씨가 손끝으로 가리키며.
“이게, 몽골 에델바이스예요. 작지만 귀한 꽃이에요.”
나는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를 굽히고, 결국 무릎을 꿇어야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흰색 꽃잎이 풀들 사이에서 수줍게 피어 있었다. 크고 화려한 꽃이 아니다. 눈에 확 띄는 꽃도 아니었다. 그러나 자세를 낮추어야만 만날 수 있는 그 꽃은 내 마음을 묘하게 다가왔다.
카메라를 꺼내 100mm 접사렌즈를 가까이 가져갔다. 지금까지 무릎을 꿇은 기억이 없던 내가, 작은 꽃 앞에서 서슴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렌즈 안에 세상의 거대한 풍경이 아니라, 소박하고 작은 꽃 한 송이가 담겼다. 무릎을 꿇는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낮아졌다. 마치 꽃에게 예를 표하듯, 자연에게 허리를 숙인 듯, 겸손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몽골 에델바이스의 꽃말은 ‘소중한 추억’, ‘고귀한 사랑’, ‘용기’라고 한다. 무릎을 꿇고 꽃을 찍던 내 모습을 기후씨가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찍고 있었는데, 옆에서 장면을 포착해 준 것이다. 덕분에 나는 내 시선뿐 아니라,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나의 순간도 함께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는 장면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평소에 너무 크고 화려한 것만 바라보며 산다. 높은 산 정상, 거대한 호수, 화려한 도시의 불빛…. 그러나 진짜 감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곳에 숨어 있기도 하다. 그 작은 꽃을 보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고,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날의 ‘무릎 끓음’을 통해 삶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도 때로는 크고 눈에 잘 띄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작은 배려, 소박한 미소, 건네는 위로 한마디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마음을 낮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삶의 나침판 같은 자세를 나는 초원 위 작은 꽃 한 송이를 통해 배운 셈이다.
에델바이스는 또 ‘용기’의 상징이라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초원의 거친 바람과 건조한 흙 위에서도 그 작은 꽃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은 나와 같은 오프로드 여행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힘든 길을 걷더라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쁨과 용기를 발견하라는 의미임을.
에델바이스처럼 작은 ‘초롱꽃’이라 불리는 녀석을 찍기 위해 무릎을 또 끓어야 했다. 고개 숙인 모양이 겸손한 모습이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다시 본다. 무릎 꿇고 땅바닥에 얼굴을 가까이 ㄴ대고 있는 나의 모습.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이것이 소중한 장면이다. 그때 나는 세상의 큰 풍경을 잠시 내려놓고, 아주 작은 꽃 앞에서 겸손해졌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며 찍은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사진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날의 몽골 에델바이스를 찍는 나의 모습, 기후씨가 담아준 사진이라고 말할 것이다. 카메라 속에 담은 꽃 한 송이와, 기후씨가 찍어 준 내 모습, 그리고 내 마음속에 새겨진 울림.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나에게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음이다.
앞으로도 삶에서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만 볼 수 있는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서슴지 않고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려 한다. 그 속에 진짜 사랑과 용기, 그리고 추억이 숨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