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점심, 야생의 식탁
오프로드 여행에서 점심은 언제나 야생적이다. 정해진 메뉴판도, 반듯한 테이블도 없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 어쩌다 보이는 게르 하나가 전부인 공간에서 우리는 은박지 돗자리를 꺼내 펴고 둘러앉았다.
준비된 것이라곤 마트에서 사온 라면과 몇 가지 3분 요리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누구의 지시도 작전도 없었지만, 영우씨는 자연스럽게 조리 담당을 맡았고, 덕종씨와 기후씨는 물을 끓이고 그릇을 나르는 보조 역할을 도맡았다. 나머지는 식사 후 설거지를 책임졌다. 정해진 규칙은 없었지만, 초원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 질서있게 움직였다. 초원은 강요하지 않았고, 그 자유 속에서 우리는 야생스러워 졌다.
돗자리 주위에는 말똥과 양똥이 흩어져 있었다.
“신기하네요, 냄새가 안 나요.”
덕종씨가 고개를 갸웃하자, 기후 씨가 웃으며.
“풀만 먹어서 그렇죠.”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냄새가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오히려 바람에 섞여 오는 흙냄새와 풀냄새가 도시에서는 맡기 힘든 잔잔한 향을 풍겼다.
처음 오프로드 여행 왔을 때, 나 또한 말똥을 집어 들고서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다. 유목민들이 마른 가축 분뇨를 땔감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작은 경험이었다. 풀을 먹은 가축은 분뇨를 남기고, 그것은 불이 되어 다시 따뜻함을 나눈다. 모든 것이 순환하는 삶의 방식, 그것이 초원의 질서였다.
그날의 점심 메뉴 역시 라면이었다. 사실 여행에서 라면만큼 확실한 동반자가 또 있을까. 울란바토르 도착해 마트에 들렀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라면 진열 코너였다. 신라면, 진라면, 너구리.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삼파전이 그곳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만 고르자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세 가지 모두 다 집어 들고야 말았다. 여행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선택 앞에서 욕심이 생기고, 혹시 모를 아쉬움이 싫어 모두 담게 된다. 그렇게 라면 봉지를 가득 챙겨 들고 야생의 점심을 준비하게 됐다.
식사 당번은 영우씨다. 라면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겠습니다”
라며 주방장을 자청하더니, 내가 무심코 라면을 봉지째 반으로 쪼개려는 순간, 그의 단호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형님, 라면을 왜 쪼갭니까. 그건 라면에 대한 모욕이에요.”
나도 모르게 손이 멈췄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다들 이렇게 쪼개서 넣지 않나…”
라면을 쪼개는 게 뭐 대수일까 싶었지만, 영우씨의 눈빛은 의외로 진지했다.
“그럼, 국수 삶을 때 잘라서 넣어요?”
라는 되물음에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국수는 그대로 삶는데, 왜 라면은 오래된 습관처럼 잘라 넣었던 걸까. 그 평이한 질문이 뜻밖에 묵직하게 다가왔다.
라면에 대한 철학을 가진 영우씨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끓지도 않은 찬물에 라면을 그대로 넣는 영우씨의 방식은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물이 끓어야 면을 넣는 거 아닌가?”
라는 질문에 영우씨는 미소 지으며
“이래서 라면의 진정한 맛을 모르는 겁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그의 태도는 흔들림 전혀 없었다. 이내 물이 끓기 시작했고, 면은 천천히 풀리며 라면 특유의 향내가 초원 위를 내뿜었다.
“30초 후에 드시면 됩니다.”
라는 그의 말에 젓가락을 들어 올려 한 입 먹는데, 의외로 신선함이 입안에서 퍼졌다. 일명 겉바속촉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방식이 무너지고, 낯선 맛이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 것이다.
“계란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고 농담처럼 말하자, 영우씨는 또다시 단호하게,
“그건 라면에 대한 실례죠.”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상하게 그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초원 한가운데서 먹는 라면은 계란 따위 없어도 충분히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점심은 흔한 라면 끼니가 아니었다. 영우씨의 ‘라면 철학’ 덕분에 평소 무심코 먹던 음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음식 하나에도 사람마다 지켜온 방식과 철학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그 차이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야생의 점심은 언제나 단출하다. 강가에서라면 설거지 걱정조차 필요 없다. 국물 묻은 그릇은 물티슈로 대충 닦고, 나머지는 강물에 헹구면 끝이다. 도시에선 번거롭게만 여겨질 일이 이곳에서는 자유로움으로 채워진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늘 기다리는 것은 믹스커피다. 종이컵에 노란색 커피 빈 봉지로 휘휘 저어 마시는 커피 맛, 그 달달함이 입안에서 퍼질 때, 모든 것이 평화롭게 보인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믹스커피 달콤함과 풍경이 겹쳐지면서 마음은 절로 스며든다.
먼 곳에 양 떼가 풀을 뜯고 말이 지나가고, 하늘에는 구름, 대지에는 그림자가, 그렇게 흘러간다.
대충 때우는 끼니였을 라면과 3분 요리가 초원에서는 진수성찬이다. 음식 자체보다 더 큰 맛은 바로 둘러앉아 함께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끓이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맡고, 그 시간이 곧 음식의 양념이었다. 라면은 인스턴트 식품이지만,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작은 의식을 치르는 재료다. 마치 도원결의처럼,
여행이란 낯선 풍경 속에서 배우는 시간이다. 길 없는 길을 달리며 풍경을 만나고, 익숙한 음식을 새롭게 맛보며, 사소한 것에서 철학을 발견하는 일. 그날의 라면은 평이한 한 끼가 아니라 야생의 식탁이었다. 믹스커피를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나며, 하늘을 보는 것.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이다. 언젠가 이 초원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은박지 돗자리 위에서 먹던 라면 한 그릇, 그리고 함께 하던 그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으리라는 사실이다. 초원의 바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