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는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
여행을 떠나기 전, 일정표를 꼼꼼히 짜고 목적지를 정하며 마음속 지도를 그려본다. 하지만 길 위에 서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순간과 장소가 오히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오프로드 여행을 하면서 두 번의 우연이 이번 여정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홉스골 호수 초입에 도착했을 때였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시간이 조금 남았다. 가이드가 불가는
“보트를 타고 기도의 섬에 다녀올까요?”
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단지 호수 위를 가르는 바람과 물결을 느껴보는 정도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배를 타고 호수 바람을 온몸으로 받는데 너무 좋았다. 세찬 바람도 아니고 적당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마치 감당할 만한 바람의 세기인데 기분이 아주 좋은 바람결이었다.
홉스골 호수는 몽골 사람들에게 ‘엄마의 바다’ 또는 ‘북방의 바다’라고 불린다. 이름만큼이나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맑고 깊은 물은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듯 청아했다. 호수를 건너 도착한 작은 곳이 ‘기도의 섬’이었다. 현지인들에게 이곳은 소망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다. 돌무더기 어워에서 세 번 돌며 기도를 올리면 가정의 평안과 안전, 그리고 건강이 지켜진다고 믿는다.
그 풍습을 따라 어워에서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면서, 가족의 건강, 이번 여행의 무사함,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마음속으로 또 빌었다. 나의 기도를 돌머더기 어워가 산신령처럼 신통력을 발휘해서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기도의 섬에 담긴 전설이나 정확한 내력은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신비로운 자연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믿고 싶었다.
또 하나의 우연은 길에서 만났다. 오프로드 여행을 하다 보면 드문드문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과 마을이 나타난다. 그날은 유독 도로변에 천막이 많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흔한 동네 행사인 줄 알았다. 차에서 내려 구경이나 한번 볼 겸 다가가 보니, 다르항 나담이라고 했다.
나담은 몽골 사람들에게는 민족의 자부심이자 역사와 전통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해마다 울란바토르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데, ‘남자들의 세 가지 놀이’라 불리는 씨름, 활쏘기, 말타기 경기가 핵심이다. 그날 우연히 활쏘기 대회를 준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활을 당기는 사람들의 눈빛은 무척 진지했고, 주변 사람들은 응원과 웃음으로 축제장을 채워갔다.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말타기 경기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계획에 없던 이 만남 자체가 행운이었다.
그들에게 나담은 마을간 친목 경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를 확인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통을 전하는 장이다. 그곳에서 몽골의 역사와 정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두 경험은 모두 계획에는 없던 것이었다.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 덕분에 기도의 섬에 다가갈 수 있었고,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나담 행사를 볼 수 있었다. 만약 모든 계획을 시간 단위와 분 단위로 맞추느라 여유가 없었다면, 이러한 선물 같은 순간과 장소를 무의미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여행의 묘미는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 새로운 길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 길은 목적지로 가는 지도가 알려주지 않는 길이고, 예상치 못했기에, 더 오래 남는 기억이 된다. 기도의 섬에서 올린 작은 기도, 잠시나마 나담에서 본 그들의 전통 숨결은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진짜 여행은 계획에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