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화장실 인문학
몽골 유목민들에게는 이런 말이 있다. ‘말 보러 간다.’ 이 말은 남자들이 볼일 보러 간다고 할 때 쓴다고 한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일상적인 생리현상을 우회하여 말하는 그들의 언어 속에는, 생활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고 어우러져 있는 지혜가 숨어 있다. 말은 초원에서 삶의 동반자이자 생존의 상징이다. 그런 말을 빌려 화장실을 은유하는 방식에는, 인간의 필요마저도 품격 있게 승화시키는 유목민의 언어 감각이 배어 있음이다.
여행 전 만남을 가진 영우씨와 덕종씨에게
“초원에는 화장실은 없지만, 화장실은 사방에 널려 있다.”
라고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막힘없는 드넓은 대초원에 서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초원은 끝없이 열려 있고, 하늘은 깊게 내려와 있다. 그 안에서 사람은 사소한 일상조차 새로운 감각으로 체험하게 된다. 문명의 시설이 부재한 곳에서 인간은 주저 없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 오프로드 여행에서 다섯 명 남자들이 함께 했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겪었던 것처럼, 급한 용무를 노상에서 해결하는 데에 큰 주저함이 없다. 그것이 초원에서라면, 그저 그런 행위보다 일종의 해방으로 느껴진다. 시야를 가로막는 건 하나도 없다. 오직 바람과 풀 냄새, 그리고 하늘뿐이다. 처음 초원 한가운데서 아무도 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볼일을 볼 때, 묘한 쾌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 자연의 일부였음을 몸으로 기억하는 순간이었다.
한 번은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운전기사와 나는 차에서 멀찍이 떨어져 용무를 보려 할 때였다. 그는 손짓과 몸짓으로 무언가를 급하게 알려주었다. 잠시 후 바람을 등지고 서야 한다는 뜻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옷이 젖는다는 말 없는 몸짓 조언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몸짓을 이해하고는 한참을 웃었다. 그 어떤 보는 이 없는 하늘 아래, 드넓은 초원에서 바람과 함께 해결하는 그 순간은,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초원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추억 하나로 남아 있다.
인간이 문명 속에서 만들어낸 화장실은 사적인 공간, 숨겨진 공간이다. 배설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본능이지만, 동시에 가장 은밀하게 가려야 하는 행위로 여겨져 왔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문명은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고 규율 속에 가둠으로써 유지된다. 화장실이라는 제도 또한 인간의 본능을 사회적으로 길들이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초원에서는 그 억눌림이 사라진다. 부끄러움은 문명이 만든 관념일 뿐, 자연 앞에서는 무의미할 뿐이다. 바람은 체면을 걷어내고, 하늘은 부끄러움을 덮어준다. 문명의 벽 뒤에서 숨기던 것을 자연 속에서 드러내며, 다시 원초적 자유와 만난다. 인간이 본능을 드러내는 순간조차, 초원에서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
그곳에서의 배설은 수치가 아니라 순환이다. 내가 흘려보낸 것은 흙 속으로 스며들어 풀을 기르고, 풀은 다시 말과 양의 먹이가 된다. 인간의 행위가 곧 자연의 순환 속 한 과정이 된다.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대신 ‘나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깊은 자각이 찾아온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행위조차, 초원 위에서는 부끄러움이 아닌 자유이며, 은밀함이 아닌 생명과 순환의 언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