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호의 저녁노을 아래서

by 만보

향호의 저녁노을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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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속의 한 장면


십여 년 전 봄, 주문진 향호의 저녁노을을 찍으러 갔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노을은 유리잔에 담긴 와인처럼 호수 위에 붉게 번지고 있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늘 빛을 찾아다녔지만, 그날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노을빛 그 자체보다, 빛 속에서 조용히 기타를 치는 한 중년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향호의 물가 난간에 홀로 서 있었다. 어깨를 살짝 구부리고, 석양이 내려앉는 호수을 바라보며 기타 줄을 튕겼다. 그의 실루엣은 석양에 녹아 어둠과 빛의 경계에 걸려 있었다. 셔터를 누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미국 드라마 출동 에어울프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고독한 주인공이 전쟁의 기억을 뒤로한 채 첼로를 연주하던 그 장면. 다만 드라마 속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날고 있었지만, 향호 위에는 대신 물새 몇 마리가 노을빛을 따라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다.


진심의 연주와 관조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셔터를 누르는 검지 손가락 힘을 빼고, 그냥 그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삶의 진정성은 거창한 비상보다, 이렇게 조용히 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손끝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그는 관객이 없었고, 박수도 없었으며, 카메라 앞의 주인공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연주하는 모습에는 어떤 진심이 어려 있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삶을 연주하는 자세였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선율은 실제로는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나는 그 무음의 음악을 오랫동안 들었다. 풍경과 사람, 그리고 시간 자체가 한 줄의 선율처럼 이어졌다. 호수 위로 반사되는 노을빛, 물가에 부서지는 작은 물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까지 모두 그 선율에 참여한 듯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잠시 숨을 죽이고 그 남자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너무 의미 있는 삶을 외부의 시선에서 찾으려 한다. 누군가의 인정, 세상의 박수, 혹은 기록될 만한 무언가. 하지만 향호의 중년 남자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는 단지 자신과 노을, 그리고 물결의 리듬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완전해 보였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활동하는 삶이 아닌, 관조하는 삶의 경지였다. 행위보다 존재로서의 충만함. 그것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잠시,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언제 진심으로 무언가를 했던가? 언제 카메라 너머의 세상을 잊고,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했던가? 그 질문은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마음의 연못에 남아있다. 그때의 노을은 이미 사라졌지만, 빛의 여운은 내 일상 속에 작은 파문처럼 번지고 있다.


향호의 노을은 빠르게 물러갔다. 붉은 빛이 점점 회색과 남색으로 번지면서, 호수는 다시 평범한 청색으로 돌아왔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하는 순간은 기록이나 사진으로 남지 않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남자의 기타 소리처럼, 순간의 감동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울린다.


내 안의 기억


그날 이후,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더 이상 단순히 장면을 담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의 마음을, 그 순간의 감정을 담으려 했다. 그리고 가끔은 카메라를 아예 내려놓고, 향호의 저녁노을을 단지 바라보며 마음의 셔터를 누른다. 노을이 내 안에서 천천히 번지고, 그 남자가 기타를 치던 순간의 정적이 내 몸과 마음을 감싼다.


삶은 거창한 무대가 아니듯이, 향호의 노을처럼, 우리의 하루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한 줄을 뜯었는가가 우리를 결정한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빛의 방향과 상관없이 자신의 중심에서 타오른다.


지금도 가끔 저녁 무렵이 되면 나는 마음의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남자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기타를 치고 있을까.”

어쩌면 그는 여전히 향호의 노을 속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의 ‘그 남자’는 내 안에서 여전히 기타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과 나를 화해시키던 한 줄의 소리처럼, 나 또한 오늘 하루를 조용히 연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사진 속 빛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바로 ‘관조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노을 아래 홀로 기타를 치던 한 남자의 실루엣이 내 삶을 천천히 비추듯, 그 순간의 경험과 성찰이 내 내면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삶은 결국 눈앞의 풍경보다 마음의 풍경이 더 깊고 넓다는 것을, 향호의 저녁노을은 그렇게 가르쳐주었다.


- 아파트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 바라보며, 이글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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