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시간

by 만보

나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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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피기 전 순간


불꽃이 터지는 순간,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호한다. 어둠을 가르며 폭발하는 빛의 파편들은 잠시나마 시선을 사로잡고, 짧은 찰나의 찬란함 속에서 일상의 무게를 잊는다.


활짝 피어난 불꽃은 대칭적이고 완벽하며, 찰나의 완성이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 화려함이 사라진 뒤, 남는 것은 허공에 흩어진 연기와 어둠뿐이다. 9년 전 서울 한강변 하늘을 수놓던 불꽃놀이 밤, 그 정점의 순간보다는 그 이전 불꽃이 피기 직전의 시간을 바라보고자 했다.


불꽃놀이 사진의 정석은 완전히 피어난 형태다. 꼬리가 남아야 성공적인 사진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관습적인 정점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미 세상은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진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보다 정점에서 한순간 이른, 불꽃이 막 터지기 시작할 무렵의 긴장이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아직 발산되지 않은 에너지, 압축된 생명의 진동이 그 안에 깃들어 있음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막 피어나기 전 비맞은 꽃봉오리가 가장 생생하듯, 불꽃 또한 터지기 직전의 순간에 존재의 밀도가 가장 높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완전히 피어난 불꽃은 동시에 사라짐의 시작이다. 피어남은 곧 사그라듦의 예고다. 그 경계의 시간, 빛이 존재로 바뀌기 직전의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고 싶었다.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날의 불꽃 한 장의 사진은 하늘 위에서 마치 한 마리 나비의 형상으로 피어오른 사진이 나왔다. 두 날개를 반쯤 펼친 모습, 마치 막 번데기에서 깨어나 첫 비상을 준비하는 순간 같았다. 그것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구도였다. 셔터를 누른 순간의 시간과 각도, 불꽃의 방향이 우연히 그 형태를 만들어 냈다. 그 우연은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때 불꽃은 ‘나비가 되는 시간’이었다.


존재의 경계, 변화의 은유


나비는 변신의 상징이다. 애벌레의 오랜 시간을 지나, 고요한 번데기의 시간을 견디며, 결국 날개를 얻는다. 그 생의 과정은 기다림과 변형, 그리고 비상의 연속이다. 불꽃도 다르지 않다. 어둠 속에서 압축된 화약의 에너지가 한순간 폭발하여 빛으로 피어나고, 그 빛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불꽃이 피기 전의 시간은, 바로 번데기의 순간과 닮아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안에 모든 가능성이 들어 있다. 그 잠재의 시간을 붙잡고 싶었고, 완성의 화려함보다 생성의 떨림을, 결과의 완벽함보다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자 했다.


실존주의 하이데거는 존재를 완성된 상태로 보지 않았다. 존재란 언제나 ‘되어가는 중’으로 의미를 두었다. 우리는 늘 과정 안에 있으며, 존재의 본질은 고정된 실체보다 변화와 가능성이다. 불꽃이 터지기 직전의 시간은 그 되어감의 순간이다.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곧 존재로 터져 나올 그 찰나의 진동, 그것은 잠재의 세계가 현실로 변하는 경계의 시간이다. 그 경계에서,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려는 첫 몸짓을 담았다.


불꽃이 나비로 피어난 것은 시각적 우연이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생명과 변화, 존재의 궤적을 응축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나비는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은유다. 번데기의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며 새롭게 태어난다. 이전 형체는 사라지지만, 그 사라짐이 새로운 비상의 전제가 된다. 불꽃 또한 어둠 속에서 사라지기 위해 피어난다. 피어남과 사라짐은 서로를 향한 거울이다. 그 두 극단 사이의 순간, 아직 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피어나려는 시간에서 존재의 진실을 느꼈다.


삼각대 위에 망원렌즈를 낀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던 그날 밤, 불꽃이 터지기 전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시간은 정적 속의 긴장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삼각대를 의지한 작가들의 눈빛 또한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빛은 아직 오지 않았고, 하늘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은 오히려 모든 가능성이 숨어 있는 공간이었다. 불꽃이 터지기 전의 하늘은 마치 새로운 생명이 숨을 고르는 자궁과도 같았다. 인간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자신의 시간 속에서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준비와 침묵의 시간을 통과한다. 우리는 종종 성공과 완성을 향해 달리지만, 사실 삶의 진정한 본질은 그 직전의 시간, 아직 피어나지 않은 상태의 떨림 속에 있다.


불완전함 속의 빛


불꽃은 짧다. 그 짧은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랜 준비와 응축의 시간이다. 불꽃이 되기 전의 화약, 어둠, 침묵, 그러한 조건들이 없었다면 빛은 존재할 수 없다. 삶도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끊임없이 되어가게 만든다. 나비가 날개를 펴기 전 고요함, 불꽃이 폭발하기 전 어둠 속 떨림. 그 순간은 존재가 자신을 완성으로 이끄는 가장 내밀한 시간이다.


‘나비의 시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활짝 핀 불꽃의 찬란함보다, 피어나기 전의 고요한 숨결을 담았다. 완성보다 미완의 진실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내게 삶에 대한 은유이자 사유의 이미지였다. 불완전한 존재에서 끊임없이 날개를 펴려는 존재이기도 하다.


불꽃을 볼 때마다 그날의 하늘을 떠올린다. 어둠 속에서 빛이 자신을 준비하던 시간, 아직 피어나지 않은 불꽃의 심장.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모든 피어남에는 날개가 있음을.’


불꽃이 되기 전의 시간, 그 잠재의 순간은 여전히 내 안에서 타오르고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사진을 ‘나비의 시간’이라 부른 이유다.


- 2025년 11월, 청송 행사장 불꽃놀이를 본 후, 이 글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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