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들려오는 가을 소리

by 만보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가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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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햇살이

아파트 벽을 타고 천천히 내려온다.

놀이터 미끄럼틀에도 살짝 머물고

단풍과 은행잎은 반짝인다.

아이들 웃음소리 바람결에 섞인

휴일 놀이터는 계절보다 한 발짝 앞서 있다.

가을은 물들어 가며 이미 따뜻한 색으로 완성되었다.


그저 평범한 휴일 오후,

유모차를 밀며 걷는 젊은 부부

등받이 벤치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커플

아무 이유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년 남자,

그 모든 평범함이 눈부시다.


소음은 아파트 벽에 막혀 고요가 머문다.

아이들 웃음이 톡톡 튀며 번져간다.

삶이란 이런 소리일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누군가의 하루를 채우는 소리.


창가에 서서 놀이터를 내려다본다.

그저 바라보는 일인데도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가끔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날이 있다.

무언가 성취하거나, 의미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의 리듬 속에서

내 마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이 있다.


단풍이 떨어지는 길 위로 누군가의 발자국이 지나가고,

잠시 후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밟는다.

삶도 그런 것 같다.

누군가의 흔적 위에 나의 하루가 놓이고,

그 위에 또 다른 이의 내일이 겹쳐짐을.


햇살이 조금 더 기울자 놀이터 색이 더욱 짙어진다.

아이들은 참새처럼 서로를 부르고, 바람은 여전히 부드럽다.

이런 날엔 철학도, 인문학도 의미 없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을 놀이터는 그렇게

조용한 하루를 다정하게 채색하고 있었다.


- 햇살 좋은 일요일 오후, 이 글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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