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구루무

by 만보

동동구루무


18 동동구루무 01_흑백_낙관_축소.jpg


동동구루무는 흥을 지고 다니는 사람이다.


사진 폴더를 정리하다가 잊고 있던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해 전, 강릉 단오제에서 찍은 흑백 사진이다. 등에 북과 확성기를 지고 흥겹게 춤을 추던 ‘동동구루무’.


그는 무대 한쪽에서 혼자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과 놀았다. 무더운 날씨에도 그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고, 그 웃음은 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그냥 흥겨워서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바라보니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세월과 고단한 삶이 묻어 있었는지를 새삼 느낀다. 그가 등에 진 것은 삶의 짐이자, 흥의 짐, 그리고 ‘나 아직 여기 있다.’라는 인간의 존재 선언처럼 보였다.


어릴 적, 장터에서는 이러한 광대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고무신 덜렁거리며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북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대단한 무대도, 조명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의 눈빛과 호응만이 그들의 예술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순간이 그들의 무대였다. 어느새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 도시는 너무 바빠졌고, 웃음은 스크린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흥을 소비할 뿐 함께 나누지 않는다. 공연은 객석과 무대로 나뉘었고, 관객은 박수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속에서 동동구루무 같은 예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진 속 그의 표정을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주름이 많았지만, 그 주름마다 웃음이 배어 있었다. 그 웃음은 억지로 꾸민 미소라기 보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하고 말하는 듯하다. 인생을 다 받아들인 웃음이었다. 등에 멘 북은 무겁지만, 그 무게를 동동거리며 리듬으로 바꾸었다. 삶의 짐을 흥으로 바꾸는 사람, 그게 바로 진짜 예술가가 아닐까.


그날 단오제는 동동구루무 한 사람의 모습만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는 누군가의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인생을 흥겨운 북소리로 풀어냈다. 그 북소리에는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낙관이, 그 춤사위에는 ‘아직 나는 여기에 있다.’라는 의지가 담긴, 한 장의 흑백 사진은 말한다. 어쩌면 동동구루무처럼 누구나 각자의 짐을 지고 하루를 살아간다. 어떤 이는 그 짐을 무거움으로만 느끼고, 어떤 이는 그 무게를 리듬으로 만든다. 그 차이가 인생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는 무대 위에서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관객들은 웃었고, 그 웃음이 다시 그의 몸을 움직이게 했다. 예술과 삶은 하나가 되었다.


‘삶의 무게를 흥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의 예술이다.’


긔의 미소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흥, 그것이 바로 ‘동동구루무’의 정신이 아닐까. 언젠가 나 또한, 내 짐을 멘 채 웃을 수 있기를, 그의 북소리처럼 내 하루도 소박한 리듬으로 울리길 바라본다.


- 2025년 12월, 옷깃을 여미는 바람이 불던 날, 사진 폴더를 정리하다가 이 글을 쓰다. -

매거진의 이전글군고구마 사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