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대가 아닌, 사람이 많지 않고 딱 여유로운 시간대에 버스나 지하철 좌석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집중이 참 잘 된다. 드디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오랜만에 전시를 하나 보고 왔다. 최근에 마지막으로 전시를 보러 간 게 9월 말이었는데, 일찍 퇴근하던 그날 탕 컨템포러리 아트와 페이스갤러리 두 곳을 가고자 했으나 결국 퇴근 시간대의 교통 체증과 두 갤러리 사이의 거리를 간과했던 나는 탕 컨템포러리 아트 한 곳밖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페이스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이번 전시는 무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자리로, '이건 무조건 봐야 해!' 그 자체였기 때문에 전시 종료를 앞둔 주말에 기필코 보고자 했던 거다.
페이스갤러리에 들어가자마자 상당히 놀랐다. 마크 로스코와 이우환의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 특히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이 자리한 2층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페이스갤러리에 여러 번 왔지만 이렇게 줄 서서 보는 전시는 처음이었다. 아니, 내가 여태껏 가 본 그 어떤 전시에서도 이 정도의 줄은 없었다. 그건 내가 주중의 여유로운 날에 전시를 보러 다녔다는 점도 거기에 한몫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유동 인구가 많은 주말이고, 이번 전시는 참여 작가의 명성부터 워낙 쟁쟁한데다,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참이었다.
3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꼬불꼬불한 줄의 끝에 합류해 전시장 입구에 도달하기까지 딱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지난 달부터 틈틈이 읽던 이제니 시인의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가 나의 기다림을 함께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출근 시간까지 알뜰히 활용해 시가 실린 페이지는 다 읽었으나, 무려 60페이지 가량의 해설(이렇게 해설이 긴 시집은 처음 본다...!), 그것도 난이도가 정말 높아 이해하며 읽기 쉽지 않은 해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줄을 서서 전시 입장을 기다리는 30여 분 동안, 그 해설을 거의 다 읽어내고야 말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니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책에 집중이 잘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이것이 일종의 멀티태스킹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 편히 독서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히려 다른 신경 쓸 거리 없이 집이나 카페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독서라는 건 한없이 즐거운 만큼 끝이 없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한가로이 책'이나' 읽고 앉아 있어도 되는 건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여기에 할애해도 괜찮은 건지 자꾸만 스스로를 불안스레 돌아보게 된다. 물론 독서란 정말 좋은 활동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을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기다리거나 이동하고 있을 때, 나는 이미 기다림이나 이동 같은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는 상태이고, 독서는 거기에 얹어진 덤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독서에 할애해도 되는지 그 당위를 따져물을 필요가 없는 거다.
이날만 해도 전시를 보러 오가는 시간과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을 합쳐 거의 두 시간 삼십 분 동안 책을 읽었다. 그렇게 앉거나 서서, 편한 책상이나 독서대 없이 책을 읽을 때면 단어를 검색하거나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거나 다른 걸 찾아보기가 그리 편하진 않지만 집중이 정말 잘 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특히 출퇴근할 때 음악 듣는 것에 익숙해진 요즘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책에 집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오래된 숙제를 거뜬히 해낸 기분이면서도 일상적인 즐거움을 아주 잘 얻어낸 듯한 느낌이다. 어떠한 멀티태스킹은 나에게 오히려 편안함을 주고 다른 무언가로부터 신경을 차단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