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이틀차에 루틴이라고 무언가를 소개한다면 너무 거창하겠지. 그렇지만 이런 때에만 남길 수 있는 기록도 있는 법이니까 써 본다. 최근 들어 시작한 게 있다. 바로 시를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읽고, (손으로) 쓰는 거다. 쓰는 건 당연히 손으로 하는 일이긴 한데 그냥 세 단어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손으로)'를 넣어 봤다. 아무튼 이전의 내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루틴을 요즘의 내가 막 시작한 참이다.
시를 읽고 쓰는 게 정말로 과거의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일까? 사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어릴 때 집에 있던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생각난다. 그때에도, 그 이후의 시간 동안에도 시에 재미를 붙여 보려는 마음은 늘 있었다. 시를 읽는다, 시를 안다,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 괜히 멋지고 낭만적인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나. 요즘 말로 '힙해' 보이기도 하고. 근데 나는 늘 시랑 상성이 안 맞았다. 그 좋음을 파악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그냥 이해가 잘 안 되는 편이었다. 그래서 시집을 자발적으로 읽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나도 시를 읽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을 보이지 않는 곳에 잘 개켜 놓고서 그리 살았다.
그러다 최근에 《읽는 사람》이라는 책을 통해 시에 눈을 떴다. 한 인터뷰에 언급된 몇 편의 시가 궁금해서 찾아봤고, 그중 한 편의 시가 실린 기형도 시인의 시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도서관에 냅다 빌려온 거다. 그렇게 해서 며칠 전부터 하루에 십여 편의 시를 읽고 있다. 사실 잘 이해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다. 어떤 시는 정말 활자 위로 내 눈길이 지나가는 게 전부고, 어떤 시는 좀 마음에 와 닿는 것도 같다. 아무튼 내 속도대로, 내 나름대로 읽고 소화해 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당분간 계속 이렇게 시집을 찾아 읽어 볼까 한다.
시집(과 시)을 읽은 건 오늘이 4일차. 그리고 하루에 시 한 편을 필사하기 시작한 게 바로 어제이니 오늘이 2일차다. 아직 작심삼일의 사흘도 못 넘겼지만 이제 나는 '십여 편의 시를 눈으로 읽고, 그중 한 편을 소리내어 낭독하고, 그와 별개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노트에 손으로 필사하는 것'을 나의 루틴으로 마음에 들였다. 별일이 없는 한 남은 2024년은 이렇게 시와 함께 보내 볼까 한다. 생각해 보니 손글씨를 쓸 일이 정말 없더라. 필사 또한 시집 읽기처럼 나름 멋있어 보이지만 나는 좀처럼 할 마음이 들지 않던 취미였는데,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무작정 필사도 시작해 봤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기형도 시인의 시 한 편을, 어제보다는 조금 더 긴 시를 옮겨 적었다. 스프링 노트에 검은색 볼펜으로 시를 한 행 한 행 적어 내려가는데, 책 한 번 보고 노트 한 번 보기를 반복하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내 뇌는 제멋대로 표현을 재구성해 불러준다. 얼마 안 되는 글줄 안에서도 제멋대로 오타가 나 찍찍 긋고 다시 쓰곤 한다. 화이트로 깔끔히 지우거나 페이지를 아예 찢어 초기화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내가 나름대로 완벽주의와 싸우는 방식이다. 첫 연을 적으면서는 이래서야 글씨체 교정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예쁘게 적으려 하지 않는다) 팔만 아프고 (나는 손글씨를 쓸 때 팔과 손목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내가 떠올려 쓰는 글도 아니고 이걸 굳이 무엇 하러 하나 싶었다. 그런데 한 편의 시가 끝나기 전에 그 해답을 얻었다. 시를 옮겨 적는 동안 머릿속이 말끔해졌다. 오로지 시만이 오롯하게 내 머릿속을 채웠다. 고작 5분 전쯤이었을 필사 시작 전에 무슨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이래서 명상을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역시 글쓰기는 눈 뜨고 하는 나의 명상법이다.
아직 난 힘 빼기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해서 한 편의 시를 옮겨 적고 나면 근육을 어색하게 사용한 게 여실히 느껴진다. 한 페이지 가득히 적어 내려간 시를 보니 첫 연과 마지막 연의 글씨체가 다르다. 나름 시작이랍시고 조금 더 어색하게 가슴을 부풀려 기존의 모습보다도 조금 더 멋진 척하는 첫 연과, 잠깐 사이에 익숙함을 되찾아 조금 더 편안하게 민낯을 보이는 마지막 연. 이렇게 시를 읽고 읽고 쓰는 몇 달이 지나가면 나는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글씨체 변화 같은 건 그리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이 시간들이 나에게 의미 있게 쌓이길 바랄 뿐이다. 자꾸 새로운 것을 나에게 들이고 싶어지는 2024년의 끝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