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빨리 읽어넘기려는 내 자아 하나를 꾹 눌러 참는 거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자주 그러는 편이지만, 어떤 책이든 대체로 그렇다. 책을 정독할 때는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단어를 찾아보기도 하고, 쉽게 소화되지 않는 문장을 여러 번 곱씹기도 하고, 앞서 나왔던 내용을 확인해보기도 하면서 매 페이지에 오래 머물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급한 성질은 그걸 참지 못하고 자꾸만 앞서나간다. 페이지의 글자들을 거의 대각선으로 훑고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 가며 책의 내용을 파악해 나가는 거다. 사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 하루에 한 권은 물론, 두세 권을 읽어내는 것도 거뜬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독서는 우선 내가 지향하는 정독이나 탐독, 숙독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그렇게 읽을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저자가 엄청난 공을 들여 써내려간 문장들과 단락들을 나는 허둥지둥 헤쳐 넘기고 지나간다는 게 못내 싫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읽으면 당연히 디테일을 놓칠 수밖에 없다. 설령 그런 식으로 책을 한 권 독파했다 해도 나는 그걸 '독서'로 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급한 마음을 달래는 데 실패한 날에는 (보통 줄거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소설을 읽을 때 자주 그렇다) 30페이지 정도까지 정독하다가 그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 놓은 채로 이후 백몇십 페이지까지 '달려나가듯' 후다닥 읽어낸 다음 다시 책갈피를 꽂아둔 페이지로 돌아오기도 한다. 사실상 큰 줄거리의 흐름을 다 알아낸 다음 디테일을 챙기러 돌아오는 거다. 물론 이런 식의 독서도 나름의 재미는 있지만, 첫째로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한 기분이 들어서 영 별로인데다 둘째로 일을 두 번 하게 되는 번거로운 느낌이기도 하고 셋째로 스포당하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를 최초공개당하는(?) 경험을 놓친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하다.
오늘도 한 책을 그렇게 허겁지겁 읽어버렸다. 심지어 소설도 아니고 그냥 에세이였는데, 저자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그렇다고 해서 정독하자니 오늘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그냥 헐레벌떡 훑어버렸다. 어쩌면 이런 성향도 완벽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도무지 성에 차질 않는 거다. 그렇다고 매 순간 모든 것을 제대로 읽어내자니 다소 부담스럽거나 버거워서 때때로 허둥지둥 읽어치우는 방식으로 도망치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도 나 자신의 중요한 키워드들이 눈에 띈다. 완벽주의, 제대로, 나만의 기준, 급한 성질, 도망 뭐 이런 것들이다. 나중에 다른 글로 쓸 것 같지만, 오늘 진행한 마지막 상담 덕분에 나 자신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채기도 했다. 이를테면 나는 스스로에게 기준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사는 게 너무 피로해서, 그런 나를 잘 데리고 다루며 살기 위한 방법들을 고안해 왔고, 그 방법들을 실행하며 사는 것도 제법 피로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셀프 운용 및 검열 상태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는 것. 그래도 이런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있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당장 떠올리진 못하더라도 지나치게 당황하진 않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삼아 본다. 책을 읽는 것 같은 사소한 에피소드마저도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의 성정으로 귀결된다는 게, 당연한 일 같으면서도 묘하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