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지난 7월, 김혼비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왔다. 평소 강연이나 강의를 들을 때면 늘 노트북으로 내용을 기록하곤 했는데, 이날은 그럴 환경이 아니어서 오랜만에 노트를 꺼내 손글씨로 기록을 남겼다. 아무래도 타이핑보다는 속도가 느렸지만, 그래도 눈과 귀에 들어오는 내용을 나름대로 조직화하고 정리하는 동시에 나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한구석에 덧붙여 적는 게 즐거웠다.
'글쓰기가 삶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순간들'이라는 제목 하에 진행된 강연에서 작가님은 글쓰기의 네 가지 힘을 이야기하셨다. 첫째, 커다란 슬픔이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 둘째, 경험을 재해석해서 다시 경험할 수 있는 힘. 셋째,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타인을 마주하는 힘. 넷째, 세상을 훨씬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힘. 흥미롭게도, 네 가지 이야기 모두에 나와 밀접하게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커다란 슬픔이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다. 작가님에 따르면 우리가 '슬프다'고 글을 쓰는 순간 슬픔이라는 감정을 관장하던 뇌의 일부인 편도체가 쉬고, 이성과 사고력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이 일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들으면서 얼마 전에 쓴 글이 떠올랐다. 나는 2020년과 2021년에 결코 짧지 않은 힘듦의 시기를 지나왔는데, 그 시기에도 드물게나마 일기는 계속 써왔고, 이후 2022년부터 꾸준히 이전의 힘듦을 돌이켜보고 글을 썼다. 글을 쓴 덕분에 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버틸 수 있었고, 글을 쓴 덕분에 그 시절을 다 '정리'해낸 다음 이젠 남의 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나의 고통과 슬픔에 관한 글을 남들에게 보이는 건 아직도 어렵다. 혼자만 보는 글이라면 힘듦을 쏟아내듯 쓸 수 있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글의 경우 지나친 자기연민에 빠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고통에 관해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나의 다음 고민이다.
두 번째는 '경험을 재해석해서 다시 경험할 수 있는 힘'이다. 작가님은 글을 쓰면서 사건을 다시 혹은 달리 해석할 수 있다고, 나의 언어로 재해석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부분에서 내 귀에 꽂혔던 건 '그렇게 경험을 재해석하면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이나 경험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속절없이 나를 덮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앞서 첫 번째 힘을 이야기할 때 작가님은 힘듦이나 슬픔이 글의 소재가 됨으로써 '내가 이걸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건 나의 중요한 키워드인 '통제(력)'과 연결되는 듯했다. 일기에도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걸 경계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적었는데, 글쓰기는 내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수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각각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타인을 마주하는 힘'과 '세상을 훨씬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나 역시 실제로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모순적인지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 또한 그러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글에서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등장하려면, 그리고 좋은 글을 쓰려면 자기 자신이 저절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도 깊이 공감했다. 물론 나의 글에서 스스로를 '난 A한 사람이야' 라고 정의했다고 해서 그 규정에 스스로를 가둬버려서는 안 되겠지만, '~하는 나'에 자주 도취되곤 하는 나의 경우에는 글쓰기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작용하는 도우미 같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기자님의 강연에서처럼 '어머, 이거 정말이지 지금의 나를 위한 얘기잖아?!' 했던 건 임지은 작가님과 김혼비 작가님이 함께 진행하신 질의응답 시간에 등장했다. '글을 쓸 때, 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어떻게 다른지 고민하게 된다'는 사전질문에 대한 두 작가님의 대화가 거의 전문을 받아적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임지은 작가님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다른 방향으로 가도 되는 신호'라 하셨고, 김혼비 작가님은 '이런 고민을 하는 분은 이미 이렇게 쓰고 계실 것'이라며 '공감 가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면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쓰기 쉽다'고 지적하셨다. 그러면서 차라리 자신에 대해 자세히, 끝까지 써보길 추천하셨다. 임지은 작가님도 개인적인 걸 파고들다 보면 보편적인 것에 맞닿을 것이라 조언하셨는데, 이 이야기들이 지금 글쓰기를 고민하는 나에게 딱 필요한 충고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어떻게, 왜 써야 하는가 많은 고민을 하는 요즘, 고민하면서도 이대로 나아가도 된다는 응원을 들은 것만 같았달까.
우연히 발견해 얼떨결에 들으러 간 강연에서, 그렇지만 결코 대충 들으러 간 것은 아니었던 강연에서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받고 왔다. 그건 따뜻한 한마디일지도, 유용한 조언 하나일지도, 혹은 그저 일말의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강연을 신청한 다음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김혼비 작가님의 책을 싹 다 빌려서 이틀 동안 급하게나마 전부 읽어보고 갔는데, 그러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이야기를 사전 정보 없이 들었더라면 느낌이 많이 달랐을 거다. 황선우, 김혼비 작가님의 공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가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띄어 읽은 것도, 그 책과 마찬가지로 최근에 읽은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덕분에 김혼비 작가님을 제대로 인식한 것도, 동네에서 진행된 작가님의 강연 그리고 여석 소식을 강연 며칠 전에 우연히 발견한 것도, 어쩌면 나의 노력이겠지만 어쩌면 이날의 100분 그리고 특히 좋았던 이야기들을 나에게 선사하기 위한 운이 따른 결과일 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나의 속마음은 알고 있겠지만, 김혼비 작가님의 클로징 멘트를 듣는데 "살아서 만나요." 라는 마지막 문장을 듣고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안녕하고, 무탈하고, 무사하고, 평온하시길 바란다는 말이 괜히 더 무겁게 다가왔다. 한두 분께라도 오늘 이 시간이 좋은 사건 혹은 경험으로 와닿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여기에서나마 적어 본다. 다음에 또 언제 어디서든 작가님과 작가님의 글을 즐겁게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이날처럼 나에게 노력과 운명이 교차한 순간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