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는 할 말이 넘쳐나지만 사진으로는 내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오늘은 글과 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꽤 많이 떠오른 하루였다. 아침부터 모닝페이지를 썼고, 하루를 보내면서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었고, 조금 전엔 씻고 나오자마자 샤워하는 동안 떠오른 생각들을 음성 인식 기능으로 급하게 메모했다.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다가도 손으로 남기는 기록이 내 머릿속의 생각과 그것의 휘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는 음성 인식이 참 유용하다. 그리고 놓치기 싫은 생각들을 정확한 활자로 붙잡아 남길 때의 쾌감이 있다.
어릴 땐 내가 하루 동안 하는 모든 생각들이 자동으로 기록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 생각은 꽤 오래도록 했던 것 같다. 잠들기 직전에, 씻을 때, 이동할 때 등 내가 적절한 기록을 남기기 어려운 순간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매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전부 기록되고, 그걸 내가 알아서 편집하고 가공하는 거다. 그 자체가 일기 쓰기이자 일기 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도 사실 그런 초능력은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어릴 때보다는 적절한 생각을 더 잘 포착하고 기록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잘 하지 않는다.
내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남의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저자 중 한 명이 '블로그를 통해 타인의 일기를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음침하게 느껴지지 않길 바라며 진심으로 공감했다. (근데 전체공개로 블로그에 쓴 일기는 누구나 읽으라고 쓴 것 아닐까...) 오늘 또다른 책을 통해 발견한 아티클(보도성 기사가 아니나 언론 매체에 실린 글은 한국어로 무어라 표현해야 하지? 칼럼...?)을 읽다가, 나에게 주어진 어떠한 일기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미 조금 읽었지만 절대 충분히 읽지 못할, 읽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읽는 것이 최선이자 어쩌면 의무인지도 모를, 아직 차마 제대로 읽지 못했고 언제 그 시점이 당도할지 모를 일기에 관하여. 이 문단이 어수선하게 느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대목이기에 그저 써 둔다.
일기를 넘어 타인의 글을 읽는 것에 관하여 이어가자면, 최근에 읽은 책이 참 좋다. 바로 황선우, 김혼비 작가님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다. 황선우 작가님은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인터뷰집 <멋있으면 다 언니>, 김하나 작가님과의 공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 내가 읽은 모든 책에서 마음에 쏙 드는 문장들을 아낌없이 보여주신 분이다. 이분의 글과, 코드와, 온도와, 깊이가 참 좋다. 올해 친구와 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엘르보이스 부스의 이벤트를 참가하고 카드 형태로 구성된 에세이 한 편을 뽑아 읽었는데, 여러 편의 에세이 중 내가 뽑은 바로 그 에세이가 황선우 작가님의 것임을 발견하고 내적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이런 반갑고 행복한 우연이라니. 그런 분이 참여한 책을 읽고 있노라니 그 독서 순간이 한층 더 좋아졌다. 김혼비 작가님의 호쾌하고 재미있고 정확하고 다정한 문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이 서간문을 모아 펴낸 책이기도 하고, 현재의 나에게 글을 쓰고 읽는 것과 관련해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문학동네에서 웹진 형태로 두 작가 사이에 오가던 서간문을 책으로 펴낸 이런 류의 책을 읽은 게 처음은 아니다. 이슬아, 남궁인 작가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이전에 읽은 적 있고, 문학동네 책은 아니지만 노지양과 홍한별 번역가의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도 읽어봤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서간문, 그러니까 편지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 간의 은밀한 비밀로 남을 수도 있었을 상호 간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고 또 신비한 일인가. 편지란 모름지기 봉투에 넣어 단단히 봉하고 상대만 볼 것이라 생각하며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법인데, 그 과정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그 이후의 결과물 또한 모두에게 보여주다니. 보통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일 두 사람 간의 편지를 완전한 타인인 내가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에너지일 수도 있고, 위안일 수도 있고, 즐거움일 수도 있고, 행복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얻었고, 지금도 얻고 있다. 그저 좋은 글을 읽는 것일 뿐인데 그게 편지 형식을 취한 건지, 편지라서 더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읽는 순간이 참 행복했다.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동안 고민해 왔던 지점에 대한 큰 힌트를 얻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수필 혹은 에세이로 대표되는 나의 글에서 '나와 타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얼마나 어디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해답 내지는 본보기를 얻은 것이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아서, 그리고 내 안의 정답이 정리되지 않아서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에 담긴 두 작가님의 글이 내게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책을 읽은 후 당분간 혼자 더 곱씹어 볼 예정이다.
요즘의 에세이에서 자꾸 글과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요즘의 내가 글과 책에 빠져 사는 중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이 읽고 쓰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지금 이게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한 삶이라는 걸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잘 알겠다. 오늘처럼 좋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서 짜릿하게 행복한 날에도, 불안과 불확실이 나를 휘감아 비관적인 시선으로밖에 읽고 쓸 수 없는 날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아무것도 읽고 쓸 마음이 나지 않는 날에도 계속해서 읽고 써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게 나를 나답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