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행동으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그리고 집에서. 주로 소설을 읽었다. 빠져들 이야기가 필요해서. 인덱스 스티커 따윈 붙이지 않고, 그냥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을 원해서.
도서관에서 영미소설 서가를 꼼꼼히 살폈다. 읽을 책을 고르는 데 한참이 걸렸다. 마치 OTT 메인 화면에서 감상할 작품을 고르느라 정작 영상의 러닝타임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쏟는 현대인들처럼. 서가의 분류 체계는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체계란 좋다.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때로는 마구마구 골라나갈 수 있다.
남의 이야기를, 남의 어려운 결과물을 이렇게 순식간에 읽어나가도 되나 싶기도 했다. 가벼운 이야기와 무거운 이야기를 모두 읽은 하루라 더 그랬다. 어쩌면 그래서 어릴 때 자꾸 판타지 소설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무게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마냥 그럴 순 없다. 무거운 이야기를 외면하는 것도 독자로서의 좋은 자세는 아닌 것 같아서, 골고루 손을 뻗게 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한 권씩 읽어나가고 있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걸까. 혹은, 이렇게 생각 없어도 되는 걸까. 그렇다기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나는 입버릇처럼 말해 온 독서를 위한 안식년을 갖더라도 마음 편히 보내진 못할 거다. 그 이후의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이미 지나온 무언가가 상당하다면 모를까.
결국 마감이 있어야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을 시간도 유한해야 더욱 집중하게 된다. 오늘은 자정을 향해 달려간다. 내일도 책을 읽으며 보내도 되는 것일까. 책은 나에게 일상인가, 도피처인가, 여가인가. 어떤 책을 찾게 되는지가 그 시점의 나를 보여주는 것도 같다. 오늘은 이야기가 당겼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2024년 대한민국과는 아주 다른 곳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