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사람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좀 오만한 생각인가? 그래도 대충 풀어내 보자면
인상을 보는 것도 좋지만, 글을 통해서 이 사람이 최소한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위험하지는 않다는 걸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실제로 누군가의 글을 보면서 '이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다
물론 활자로 만난 사람과 현실 친구가 된 사람은 또 다르겠지만서도.
글로 사람을 본다는 게 글 잘 쓰는 사람을 찾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글을 잘 쓰면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유려하게 쓴 글이라도 끌리지 않을 수 있고
투박한 글일지라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그건 순전히 그 글에 달려 있다
글에는 성의가 드러난다
그 사람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자주 쓰는 단어나 어투도 드러난다
가끔은 글 쓴 사람이 내비치려 의도하지 않은 것도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단 하나의 면만 접할 수 있다면
그의 글을 읽어보는 걸 선택하겠다
블로그 느낌의 일기라면 가장 좋겠다
학술적인 글을 읽어보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자신이 드러난 에세이가 좋지만 에세이를 각 잡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당신의 일기장을 한번 읽어보아도 되겠습니까- 하고 살짝 물어보는 거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주로 작가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많이 끌린다
이 사람의 매력적인 세계를, 활자 너머 현실을 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작가라는 업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애써 거리를 두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건 글 쓰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문가이다
그들의 글에는 그들이 엄청나게 드러나지만
내가 그렇게 글을 통해 접한 그 사람은 과연 그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책을 읽은 다음 '나는 이 작가에 대해 잘 알아' 하고 생각하며 약속 장소에 나타나는 건
어설픈 오만이자 치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독에 가깝겠지
한편으로 작가로서 글을 내놓는 사람들의 경우
글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판단하려 들지 않는 것이 독자로서의 예의라는 생각도 든다
취약함을 감수하고 글이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이들을
적어도 빠르게 잘못 판단해 버리지는 않는 것이 내가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인 거다
그렇지만 정말로 글에는 그 사람이 엄청나게 드러나고,
직업인으로서의 작가들도 대체로 예외가 아니다
올해 한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읽다가 한 단편소설에서 등장한 설정,
그러니까 주인공이 이러하게 자라났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주인공에게 부여된 하나의 화두 내지는 발상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이게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나왔으리라 직감했다
작가 본인이 살면서 그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으리라는 거다
이건 그렇지 않고서야 쓸 수 없는 문장이었다
아님 최소한 타인의 진술을 들었든지.
그렇지만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책이었던가, 다른 장편소설집에서였던가,
해당 작가에 대한 정보가 담긴 단락에서(아마 작가의 말 정도가 아니었을까)
정확히 그 대목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자라났다는 것을.
이건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만,
한 편의 글에는 정말로 그 사람의 많은 것이 드러나고
그건 생각보다 쉽게 읽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글은 어떠한가
누군가 글로서 나를 처음 마주한다면 어떠한 인상과 생각을 갖게 될까
글에 투영된 나란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대체로 글에서 나를 숨기려 하기는커녕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있는 힘껏 더 드러내려 하는 편이라서
때로는 지나친 솔직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궁금해진다
나의 글이 보여주는 나라는 사람이
과연 어떠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