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만화로 된 60권짜리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다. 모르긴 몰라도 열 번은 읽었을 거다. 좀 과장 같나? 아무튼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다섯 번 이상인 건 확실하다. 지금 찾아보니 내가 읽은 건 일본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버전으로, <전략 삼국지> 60권짜리 시리즈더라. 당시 책날개엔가는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는 문장이 언급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금 책 정보를 찾아보면서 본 소개글에는 '삼국지는 미 육군 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등에서 필독서로 선정할 정도로 인정받은 고전'이라는 말도 있었다. 만화 삼국지도 쳐주는 거겠지? 그렇다면 괜히 뿌듯해진다.
어릴 때 왜 그렇게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대한 세계관을 선호하는 내 경향이 반영되어서였을까. 아무튼 집에 있었던 그 만화 삼국지 시리즈는 살면서 그 어느 시리즈 도서 못지않게 자주, 즐겁게, 기꺼이 읽은 기억이 난다. 시간이 허락할 때면 1권부터 차근차근 60권까지 읽어나갔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면 특정한 대목만 골라 읽기도 했다. 가장 좋아한 인물은 제갈공명이었고(한국인들이 제갈공명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 시간상 그는 삼국지 후반부에 등장하기에 주로 그가 활약하는 장면들을 선호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삼국지를 읽은 지 꽤 오래된 지금도 거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이 세밀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훤히 생각난다. 가장 잘 알려진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이런 굵직한 인물들도 있지만,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세세한 인물들, 이를테면 사마의, 강유, 주유 같은 인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딱 한 버전의 만화 삼국지만 되풀이해서 보다 보니 모든 인물들을 거기서 다루어진 외양과 묘사대로 인식해 버리는 좋은 면이자 나쁜 면도 있었는데, 덕분에 오나라의 노숙이나 남만의 맹획은 상당히 답답한 위인으로, 위연은 천하의 재수 없는 인간으로 아직까지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촉나라를 위해 자신의 수명을 늘리려던 제갈공명의 기도가 위연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 건 아직까지도 읽을 때마다 분개하게 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삼국지 속 한 조연을 주인공으로 다룬 한국 소설을 읽고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었다. 어떤 인물인지 쓰지 않는 건 해당 인물을 도서 분야에서 검색하자마자 딱 하나의 소설이 상단에 등장해 어떤 책인지 뻔히 알 수 있기 때문이고, 내가 그걸 여기서 노골적으로 다루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인물은 내가 읽은 60권짜리 삼국지 중 한두 권에서나 나왔을까, 이름난 장수도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의 '조연'에 해당했다. 그런데 이달에 읽은 소설 속에서 그는 정말로 입체적이자 개성적인 인물이었고,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러네? <삼국지>에서 이건 다루지 않았구나?' 하면서 내가 그동안 이야기를 얼마나 납작하게, 혹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깨달았다.
수많은 인물들, 죽어나가는 만 단위(사실 수십, 수백만이라 하는 게 더 맞겠지만)의 병사와 백성들까지 고려하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수십 권짜리 이야기에서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골고루 충분히 주목할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게 '충분히 묘사될 수 없다'는 사실조차 내가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건 새로운 수확이었다. 어쩌면 책에서 수많은 장을 할애해 멋지게 묘사해 준 제갈공명 외에도 삼국지엔 내가 좋아할 만한 수많은 인물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전에 블로그에서 언급한 <홍루몽> 그 이상으로 <삼국지>에 대해서 이루어진 연구나 재해석이 정말 많을 텐데, 그건 그만큼 삼국지에 존재하는 틈이 (때로는 좋은 의미로, 때로는 그리 좋지 않은 의미로) 많다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의 내 <삼국지> 독해가 아쉬워지진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진 읽기의 가능성이 그만큼 방대해진다는 의미이기에, 더 기쁘기도 했다. 모든 이를 제갈공명만큼, 유비만큼 자세히 다뤄줄 순 없다 해도, 작게 다루어지고 넘어가 묻혔던 조연들에게 굵직한 주연들만큼의 관심을 줄 순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만큼 깨어날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을 테고.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을 상대하지 말란 말은 아마도 그 방대한 전쟁과 갈등의 서사, 수많은 전략과 계책이 다루어진 저서를 여러 차례 독파한 이에게 그에 버금가는 지식과 지혜가 쌓였을 거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했을 텐데, 어째 나는 똑같은 책을 수 차례 읽으면서도 오묘하고 신묘한 계책과 전략보다는 한 명 한 명의 인물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저 한 명의 병사는 여러 차례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고단하고 지난했을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뎌냈을지,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저 여인은 궁궐에 갇혀 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 쪽에 집중해 책을 섭렵했다면 상대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꺼이 상대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