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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모 Oct 27. 2024

메이크업 받는 것도 어려울 줄이야

꾸밈을 싹 다 외주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마냥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온갖 유형의 꾸밈을 애초에 어려워하는 사람이라서, 집안일과 요리와 꾸밈이라는 영역은 전부 외주를 맡겨버리고 나는 마음 편히 손대지 않고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거기에 들일 시간과 에너지로 차라리 돈을 벌어서 전문가에게 대가를 지급하는 게 서로에게 훨씬 나은 길일 것만 같았다. 요즘도 그런 마음은 여전하다. 요리든, 집안일이든, 꾸밈이든 내가 직접 하는 건 수지타산도 가성비도 맞지 않으니 그냥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


가뜩이나 바쁜 아침에 고데기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고 치장을 하고... ('치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서부터 꾸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럴 시간에 나는 차라리 전문가에게 나를 내맡기고서 책을 읽고 싶다. 아이돌을 좋아하다 보면 헤어나 메이크업을 받는 비하인드 영상을 적잖게 볼 수 있다. 보통은 모두의 편의(?)를 위해 폰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그 와중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딱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 에너지를 아껴서 더 나에게 필요한 곳에 집중하고, 그 시간을 전문가에게 맡김으로써 더 나은 결과물을 내는 것.


최근에 아이돌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헤어와 메이크업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만 하던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실현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경험한 그 순간은 내 예상과 꽤나 달랐다. 우선 나는 내가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는 내내 전문가 선생님의 모든 손길과 움직임이 신경 쓰였다. 특히 화장이 가장 어려웠다. 난 메이크업을 하는 데 30분 넘게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고... (내가 무대에 서는 것도 아닌데!) 위쪽을 쳐다봤다가 눈을 내리깔았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입술을 다물었다가 내밀었다가... 선생님의 지시와 상황에 맞게 얼굴을 내보이는(?) 것마저 피로했고 나에겐 어려웠다. 메이크업을 마쳤을 때는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그날 실감했다. 나는 전문가에게 마냥 나를 내맡기는 것도 잘하지는 못하겠구나.


적성과 성향의 차이라는 걸 알지만, 새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물론 그들과 나에겐 서로 다른 강점과 장점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투성이다. 카메라 앞에 서서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것, 정말 많은 순간을 자의와 타의로 기록당하는 것, 기록된 자신의 모습을 수없이 보는 것, 정해진 자신의 공간 없이 유동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것,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객관화하는 것,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행동하는 것, 그리고 이번에 새로 깨달은 헤어와 메이크업을 매일같이 받는 것까지... 세븐틴 멤버들이 무언가를 스포할 경우 적용되는 벌칙이 '헤메 1등으로 받기'로 바뀐 이후로 그 누구도 스포의 '스'도 꺼내지 않는 게 이해가 된다고 하면 무리일까. 아무튼 나는 아이돌이라는 직업과 정말 모든 면에서 어긋나는 것 같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샜는데, '꾸밈'과 관련해 요즘 느낀 것들을 두서없이 이야기해 봤다. 나는 내가 제대로 메이크업을 받아보고 나면 스스로를 다채롭게 꾸미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커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그날 하루 정도만 지속되었던 것 같다. 타고난 성향과 귀찮음과 비용 대비 편익 분석(ex.화장할 시간에 책을 읽고 싶다)이 결국 이겨버린 거다. 그래도 희망이 영 없지는 않다. 최근 오피스룩 비슷한 복장을 조금 장만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오랜만에 옷 쇼핑을 했는데, 쇼핑몰을 쭉 돌아다니다가 자라 매장에선가 마음에 드는 옷들이 쏙쏙 보이더라. 당장 입기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입고 싶은 것들이었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꾸며보는 일을 내가 아예 단념하지는 않으리라는 걸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입을 옷을 고르는 것도 정말 번거롭다... 아무튼 이 모든 게 조금 더 쉬워지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살짝 기대보면서, 아직은 꾸밈을 마냥 어려워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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