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학교를 생각해 본다.
교무실에는 중간중간 난로가 있었다. 교무실 천정까지 닿을 듯하며 바깥 창문 쪽으로 길게 뻗은 연통을 둘러싼 하얀 반짝이 알루미늄 호일(foil)과 난로 위에 올려진 찌그러진 주전자가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학교마다 주전자는 왜 그리 찌그러졌는지, 주전자 살 예산도 없었던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교무실에 들어서면 공기를 휘감는 담배 연기와 은은히 배어 있는 포마드(pomade) 냄새가 선생님을 가까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교무실에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선생님들 책상 위에는 지금의 성적일람표 같은 것을 일일이 손으로 썼는데 반평균이나 석차를 내기 위해서는 '주판'이라는 것을 사용했었다. 더러는 수계산이 빠른 학생을 불러서 합계를 내거나 검수 과정을 시키곤 했다. 이런 관행은 내가 발령받은 두 학교를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93년 부산에서 처음 만들어진 '엑셀'이라는 프로그램 연수를 받고 나서 한동안은 신기한 엑셀에 빠져 학급관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즈음은 아마 학교 차원에서 전산 담당 선생님이 초보적인 컴퓨팅 작업으로 성적처리를 했을 것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한데, 학교의 전체 수업 시간표를 작성할 때 그전까지는 커다란 전지에 손으로 표를 그려서 양옆으로 교시와 교사명을 쓰고, 단추를 칸칸이 놓았었다. 과목과 교사가 많아지면서 행정실에 부탁해서 시장에서 색깔별로 단추를 20-30개씩 사다준 기억이 난다. 그 후 시간표 작성은 엑셀의 도움으로 수작업의 수고를 덜게 되었다.
그렇게 아날로그로 진행되었던 학교에서 어느 날부터 교무실 책상 위에 커다란 데스크톱(desk-top)이 놓이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놓이면서 학교의 다양한 문서가 아래한글과 엑셀이라는 주요 프로그램으로 작성되기 시작했고, 한동안은 잘 돌아가지 않는 컴퓨터와 프린터와 씨름하느라 행정적인 업무가 더 늘어났다. 더불어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교무실을 찾아오는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학생을 마주 보면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컴퓨터가 책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항상 켜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선생님들은 학생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건성으로 묻고 대답을 하게 되었고 학생들도 선생님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이내 자리를 떴던 기억이 나는데 업무에 치인 상황이었겠지만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교실은 오랫동안 표면적인 변화가 없었다. 학생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오래된 칠판과 백묵이라고 불렸던 분필로 인한 가루가 날리고, 선풍기도 없는 한여름을 지내며, 학생들은 권위주의와 윤리의식에 갇혀서 숨도 못 쉬고 지냈었다. 1990년대 말쯤인가 '프로젝션 TV'라는 대형 모니터가 갑자기 좁은 교실 앞을 가득 채웠다. 아마 그 당시에 EBS 교육방송 시청하기가 유행했던 것 같다. 대형 모니터 하나로 졸지에 구닥다리 학교가 첨단 시설이 된 듯 학생들은 신기해했다. 하지만 '프로젝션 TV'도 노후 등으로 여러 차례 교체가 되면서 점점 학생들의 시선에서 멀어졌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적도 있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학교가 대기업의 퇴물 기자재 처리소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교실에 에어컨이 들어온 것은 201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그간의 과정을 몸으로 느껴온 교사들에게는 새로운 감흥이 생겼지만(당시 학원가에서는 이미 교실에 에어컨이 있었다.) 자라오면서 학교의 현대화 과정을 경험한 2010년대 10대들은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10년 전 선풍기 만으로 더위를 견뎌낸 10대들은 그렇게 학교생활을 기억하며 성인이 되었고, 에어컨의 10대들은 또 다른 자신들의 학교를 기억할 것이리라. 시설의 현대화 못지않게 한국의 10대들은 자주 바뀌는 교육부의 정책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해 왔으며 자조 섞인 말로 실험실의 쥐만큼이나 다양한 교육과정의 실험을 겪어왔다.
2020년대 학교는 외형적으로는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학생수는 OECD 수준으로 떨어졌으며(의도하지 않았지만...), 교실은 전자칠판과 빔프로젝트, 슬라이드로 전면을 채우고, 학생들에게도 필요에 따라 개인별 태블릿(Tablet)을 수업에 활용하면서, 이제는 글 쓸 일이 없어지고, 필통을 가득 채운 필기구는 더더욱 사용할 일이 없어지고 있다. 학교 건물은 현대화되고, 더 멋지게 변했고, 더 깨끗해지고, 학생들을 위한 휴게공간도 더 많아지면서 정말 (지금 어른들이) 보기에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날 정도로 좋아졌다.
한국학생들은 수십 년째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수준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가 현대화된 지금은 물론이고, 학교의 시설이 열악하고 학생들이 넘쳐나는 수십 년 동안 우리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은 세계적이다. 하지만 행복지수로 본 한국의 학생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겉으로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작 한국의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학교는 변했지만, 학교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권위와 존경은 고사하고 직업인으로 학생, 학부모의 요구에 치인 행정 사무원이 되어 버리고, 여러 가지 민원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교사의 불행은 학생의 불행에서 오는 것 같다. 초롱초롱하며 말하기 좋아하던 초등학생들이 졸업만 하고 나면(아니 그전부터도) 6년 뒤에 있을 대학입시로 긴장을 한다. 1993년 처음 도입된 수능시험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며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수능으로 정해진 서열은 대학으로 이어지고 그 이후 학생의 미래를 좌우하는 학벌주의는 수십 년간의 교육의 외형적 발전과는 달리 답답한 학교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이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인 것 같아 과거의 추억을 되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학교문화를 변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