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받은 과분한 사랑

by 마라곤

IMF 이전 시대의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들이랑 너무나 달랐다. 돌이켜보면 1997년의 IMF를 전후하여 학교에서 본 아이들이 달랐고, 2010년도 후반부터 아이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아이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20대였던 때의 10대의 아이들은, 순수하고 풋풋했고 5월의 싱그러운 초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한창 장난치고 나대고(?) 할 나이인데도 행동은 조심스러웠고, 자기표현은 서툴렀지만 눈은 초롱초롱했었다. 학교의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선망의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으며, 어떤 짓궂은 행동이라도 초래될 결과를 짐작은 못하지만 악의는 전혀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아마 학교 외에 남자라고는 아버지 밖에 없었을 때였고, 그때의 아버지들은 유난히 자녀에 대한 표현이 서툴렀고, 또한 권위적이었다.


학원이라는 것, 과외라는 것도 극소수의 아이들이나 할 때이고, 모든 배움은 오로지 학교에서만 이루어진 탓에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말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열의가 직접 전해졌다. 그렇다고 별 창의적인 수업도 아니고 열심히 옮겨 적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듯이 당시는 한 학급에 아이들이 최소 50명 이상은 되었으니 아무래도 선생님과의 공간적 거리도 넓지 않았고, 학생들과 대면 접촉할 일도 많아서 온종일 그 틈바구니에서 같이 지낸다고 하면 애정 아닌 애정도 느끼고, 또한 한창 사춘기인 그들의 가슴속에 불꽃같은 뭔가가 찌직거리는게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시교사(지금은 기간제교사) 신분으로 잠시 만났던 여고 1학년 학생들과 그 당시 소풍이라는 것을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나이 많고 권위적이었던데 비해, 아직 풋풋했던 나에게 모든 학생들의 관심이 쏠려서 피해 다니다가 같이 사진 찍자는 일부 극성팬의 성화에 마지못해 응했던 것이 다른 학생들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어, 서로 데려가려고 붙잡는 통에 웃옷의 단추가 떨어져 나가는 참사가 벌어졌던 일이 생각이 나는데, 한편으론 당황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였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고, 그때 처음으로 그들의 민낯을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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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몇몇 여학교를 거치면서 여학생들의 온갖 모습들을 경험하였다. 수업 중 유독 특정 선생님에게 애정 공세를 퍼붓는 학생들을 '반짝이'라고 불렀다. 반짝이의 유형도 다양한데 풋풋하고 애절한 감성이 담긴 손 편지를 수시로 책상 위에 올려놓는 순정파도 있고, 음료수 등을 수업시간마다 교탁에 올려놓고 친구들에게 애정을 선포하는 선물공세형, 교사가 출근도 하기 전에 일찍 교무실에 와서 책상 위에 꽃을 꽂아두고 가는 라 트라비아라(춘희) 형, 학교에서는 이 모든 행동을 자제하고 학교 마치고 집에서 선생님에게 전화로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전화대화형도 있었다.


여고생의 기지는 애정공세로 끝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유명무실한 만우절은 여고생들이 그동안의 설움(?)을 표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만우절날 아이들의 기지는 수년을 걸쳐 전승되어 해마다 수준이 향상되었다. 교실이나 교실 명패를 뒤바꿔놓거나, 교실문을 열면 나타나는 엉뚱한 장면은 기본이고, 친구들끼리 서로 말다툼하여 냉랭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순진한 교사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를 써보고), 선생님의 의자 방석아래 물풍선을 넣어두거나 음료수를 주사기로 빨아들여 다른 것을 넣기도 하고, 심지어는 위로한다며 주는 커피에 수면제를 타서 어쩔 수 없이 강제 조퇴를 해야 했던 일까지 아이들은 그날만큼은 공부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신들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10년 뒤, 그보다 어린 나이에 어쩔 수 없이 IMF를 겪고 난 새로운 10대들은 뭔가 더 기가 죽어 있었다. 물론 학교가 있는 지역이나 동네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도 많이 다를 것이다. 내가 있었던 학교는 비교적 낙후(?)된 곳이라 학부모의 성화도 뜸하고, 학교에 대한 신뢰도 높은 편이라 아이들도 대개 착한 편에 속했다. 10년 전에 있었던 '반짝이' 나 애정공세는 사라졌으며, 아이들이긴 하지만 예전보다 자신의 미래를 더 걱정하고 성숙해졌다고나 할까? 이러한 변화가 IMF 위기를 겪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10년의 철없는 모습보다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그 후로 옮겨간 또 다른 학교에서의 10대들은 좀 더 투박하지만 여고생의 시샘과 경쟁의식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제는 아이들이 교사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관심은 끌고 싶은데, 그런 나를 바라봐달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후 또 다른 10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요구가 많아지는 것 같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고, 어린 나이일수록 (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본능을 가졌다고 하는데, 30년 전 아이들은 제도와 통제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았던 것 같았다.(그 세대는 그래도 지금의 20대보다는 경쟁이나 학벌주의가 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지금의 아이들은 지금의 20대가 겪는 생존경쟁을 보고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의식이 배어 있지 않았나 싶다. 학벌주의와 능력주의가 더욱더 고착화되고, 입시경쟁이 치열해져서 그런 환경이 아이들에게 학창 시절의 웃음이나 설렘보다,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걱정과 다짐에 더 몰두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관리(?)가 그들에게 웃음끼를 빼앗아 버렸는데, 30,40년 전 어쩌면 방치했을 수도 있었던 자녀교육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라는 엉뚱한 논리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 아이들과 미우나 고우나 토닥거리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믿어준 그 라포(rapport)가 새삼 소중하고 그때 그 아이들이 몹시도 그리워진다. 이런 그리움이 세월이 흘러 추억을 반추하는 아스라함이 아니라 지금의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되며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옮겨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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