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교실 밖 만남

가정방문

by 마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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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학교에는 매년 학년초가 되면 가정방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부산뿐 아니라 아마 전국적으로 획일화된 제도 속에 있었으니 지금의 50,60대는 학창 시절에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담임이라고는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주로 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 했으니 아직 담임하고 라포(rapport)가 생기기 전이라 서먹했을 때였다.)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어린 학생들이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아마 굉장히 불편해했으며, 때로는 새로운 담임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전전긍긍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지만 그 당시 담임을 집으로 안내하는 그 학생의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다. 그때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불안한 시대였고, 그런 탓인지 개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정보 보호와 같은 개념이 없었다. 공납금이라고 불리는 학교에 내는 경비에 대해 감면을 받으려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했고, 부모가 느끼는 그러한 불편함이나 주눅 든 것 같은 심정은 아마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일은 가정방문이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으리라 짐작이 간다.


가정방문은 보통 3월에 담임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미리 동선을 짜놓고 해당하는 학생을 따라 학생의 집으로 가서 주변의 주거환경이나 통학 거리 등을 살펴보고 학생의 부모를 만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예상하듯이 주거형태와 생활 수준에 따라 부모와 학생의 표정이 다양했으며, 부모를 만나면 아이는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기도 했는데, 어떤 경우는 조부모와 함께 지내는 경우나 부모가 집에 없어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방문은 담임 입장에서는 학생의 학교밖 생활을 알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학교는 어떻게 오는지, 어떻게 사는지, 부모는 어떤 분이고 학생과의 대화는 어떤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공부방은 있는지 등등 학교에서는 알 수 없는 궁금증이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개인보다 집단을, 가정보다 학교가 우선시되는 시대였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학생의 집이 단칸방에 딸린 부엌이 전부였는데, 그 방에 모두 8명이 지내는데, 방바닥의 구들이 군데군데 함몰되어 울퉁불퉁한 바닥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차마 그 자리에서는 뭐라 말을 잇지 못했는데 그 아이들이 겪어야 할 가난의 굴레가 학교 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그 이후 그 학생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때 생각만 하면 가정방문이라는 선의의 방문이 그 학생에게 미쳤을 한없는 부끄러움과 굴욕이 오랫동안 걱정이 되었다.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과 제임스 헤크먼(James J. Heckman) 교수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여기에 인용하는 것이 가정방문을 통해 느꼈던 아동기의 가정환경이 성인이 되고 나서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로 이어진다면 지나친 화제의 비약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 된 것 같다.


"개인 간 소득격차의 절반이상은 성인 이전의 환경에 따라 이미 결정된다. 아동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중요한데, 이는 다른 정책 수단보다 투자 수익률이 높다. 이들의 삶에 일찍 개입할수록 효과가 크며 범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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