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교, 그 아이들

교사가 되다

by 마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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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화창한 봄날의 푸르름 속에서 해맑은 가을날의 청명한 빛으로 소리 없이 물드는 승학산의 자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3-4반 악동들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머릿속에서 하나, 둘씩 나래를 폅니다. 비록 ‘악동반’이란 명찰을 붙이고 다니는 우리 반이지만 NO총각 OOO 선생님을 가시버시 만들기 위해 온갖 꾀를 내는 의리의 악동들입니다. 그럼, 악동들의 장기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노력’이란 두 글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열중인 OOO, 우등생인데 근래에는 잡기(?)에 들뜬 OOO, 악동들의 우상인 브레이크 댄스의 무형 문화재, Mr O, 마취용 독가스 제조기 부르스 O, 변강쇠, 빡빡이(=타이슨), 뻔뻔이, 실장인 OOO, 고등어, 꽃뱀, 원생이....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소유자들이지만 한 그루의 푸른 솔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으로 서로의 마음이 뭉쳐진 의리의 사나이올시다.

학교 선생님들의 love(? 아마 heart)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악동들이지만 우리의 다짐인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명언과 N O 총각 선생님의 명언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단 진실치 못함을 두려워하라’는 이 말을 우리 악동들은 마음속 깊이 새기며 ‘대기만성’이란 네 글자에 가려 철없는 중학시절을 보냈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한 그루의 솔이 되기 위해 우리 악동들은 내일을 향해 달려 나갑니다."


1987년쯤으로 기억이 난다. 발령받은 첫 학교의 중3 아이들의 졸업에 남기는 말을 자세히 볼 기회가 없었는데, 30년 이상에 내가 몸 담은 곳의 기억을 남겨야 할 것 같아 찾아낸 그들의 마지막 한마디가 결코 범상치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이야 중3 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질풍노도의 절정기를 달리고 있어 집집마다 거의 초비상사태로 경계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당시의 중3은 기억하기로 물론 앞뒤 안 가리는 저돌성과 공격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지금의 초등학생보다 더한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놀랍게도 지금은 그들도 어느덧 50년대의 중년으로 접어들었고, 더는 아이들이 아니지만 나에게 그들은 여전히 아이들이니 기억은 시간을 거스르는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하므로 놀라운 일이다.


그때는 한 반에 학생들이 60명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좁은 교실에 덩치 큰 아이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여름이면 선풍기도 없었고, 겨울에는 교실 중간에 난로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했던 수업도, 막 사범대를 졸업하고 발령받았던 터라 세련되지 않은 강의식,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달하기에 바빴고, 아이들은 무슨 신의 계시를 받듯이 오롯이 선생의 입만을 쳐다보며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받아 적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때 교사는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스승이었고, 학교에서의 부모였고, 자신의 인생의 등불이었을 것이다. 그때 젊은 혈기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좀 더 살갑게 형님으로, 인생의 선배로서 더 나은 조언을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때늦은 후회가 지금에서야 밀려들기도 한다.


인생은 그렇다. 그들의 삶도 그럴 것이다. 그동안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그 아이들에게도 중3 학창 시절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아니 나라는 선생을 만난 것이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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