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된 사회, 직업인 교사

만연한 촌지문화

by 마라곤

촌지(寸志)란 일본식 한자말로 원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은 학교에서 거의 사라진 말이 되었지만 한동안 학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진 관행이었다. 아마 형태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어느 목사가 영부인에게 전달했다는 값비싼 선물도 오랫동안 뿌리내렸던 촌지문화에서 발전된 것이리라.


학벌 중심 사회가 지금은 더 심해졌지만, 그전부터도 학생의 학교생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되는 교사에게, 학부모들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촌지문화에 순응하며, 한편으론 스승이라고 조심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아이에 대한 비뚤어진 애정을 표현하는데 점차 익숙했을 것이다.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낼 정도가 되면 그에 맞는 촌지를 준비하는 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장려되는 그런 분위기가 나에게도 한동안 그리 낯설지 않았다.


학부모 상담일이라고 정한 날에 학급에 10여 명 정도의 학부모가 담임을 만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고, 한 사람씩 아이 이야기를 꺼내며 상담하는 동안 학부모는 각자 성의껏(?) 봉투를 내밀었던 기억이 난다. 상담을 마치고 귀가를 서둘며 가방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봉투에는 그 당시 월급의 1/3 정도의 촌지가 들어 있었다. 초임 때라 난감하면서도 그때는 다들 그렇다고 하니 별로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했었다.


촌지문화가 교사를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하지 못하게 하고, 학교의 여러 부조리와 부패를 눈감게 하는데 좋은 구실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촌지 거부를 공식적으로 주장하거나, 단호하게 거절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제법 세월이 지난 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근무한 학교는 교사들의 비선호지역에 있었고, 돌이켜보면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놓여서 심하지 않았던 탓도 있고, 누구처럼 촌지를 받아서 아이들에게 간식 등으로 되돌려 준다면서 스스로를 위안해하기도 하였다.


촌지와 관련하여 억울하게 팽 당한 것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꼭 날을 만들어 떠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불만도 많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조그만 선물을 건네면서, 수업에서 해방되고 하루를 재밌게 노는 구실로 삼은 지 이력이 난 것 같았다. 젊은 교사 시절에 아이들에게서 받는 조막만 한 선물들을 보면서 난감하면서도 흐뭇해했고, 아이들이 정성껏 쓴 손 편지에 어떻게 표현하고 반응을 보여야 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던 날이었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선생님에게 어떤 선물을 마련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각자의 사는 방식에 따라 어린 마음속에 적잖이 고민이 있었으리라.


세월이 좀 지난 후 어느 날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부모가 복도에서 배웅하는 교사의 손을 잡고 봉투를 전달하려다 놀란 교사가 손을 뿌리치는 바람에 현금 다발이 복도에 흩날리던 해프닝이 생각이 난다. 수업 후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가는 많은 학생들도 이 상황을 목격하였으니, 학부모와 교사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이들은 어른들이 주고받는 촌지의 의미와 그런 관행에 순응해 온 교사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 현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2000년 전까지도 학교에는 학부모의 촌지 외에도 크고 작은 명목의 외부 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촌지문화가 깊이 배어 있었다. 그때는 교사의 임금이 타 직종에 비해 박봉이었고, 교직을 선호하지도 않았던 터라 아마 그런 곳에서 임금을 보전하려는 분위기가 평교사부터 고위 공무원까지 팽배했다고 생각된다. 그런 부패 고리에 서로 물려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항의 한번 변변하게 하지 못했고, 교사는 밖에서는 선생님! 하면서 존경받는 듯하였지만 철저히 뿌리내린 관료주의와 학교 내 서열문화에 종속했었으니 이러한 분위기가 결국 교원노조를 결성하는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교원노조가 결성되고서도 합법으로 인정받지 못해 1500명 이상의 교사들이 파면이나 해임을 당하고, 1999년 7월 1일 드디어 노조가 합법화 되고서도, 남아있던 촌지 문화는 겉으로는 2006년 학부모로부터 10만 원 촌지를 받은 교사가 파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서야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를 시작으로 번진 촌지 거부 운동이 공직자 모두에게 공식화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 9월부터 시행된 '김영란 법'의 영향 때문이겠다.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촌지 문화는 더 이상 학교에서는 없다고 본다. 정말 잘 된 일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공직자에게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은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 선동과 불법이 통하지 않는 합리적 상식과 윤리의식으로 지탱이 되고, 학교부터 민주시민 교육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면, 촌지 문화가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사회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문화를 만들어내는 곳이 학교여야 하며, 그런 교육 환경 속에서 떳떳한 선생님들이 참 스승으로서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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