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노동조합은 긴 세월 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40,50년 동안 정치적 혼란과 독재로 민주주의는 싹이 트이기도 전에 밟혀버린 셈이다. 정치가 숨죽이고 있을 때 교육은 체제 순응과 무관심으로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하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1960년에 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나 곧 516 군사 쿠데타로 짓밟히고 수많은 교사들이 체포되어 기소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30년이 지난 1989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되었다. 물론 당시 노태우 정부로부터 불법 단체로 탄압받고 약 1500명의 교사가 조합 탈퇴를 거부하여 해직을 당했다. 내가 첫 발령을 받아 중학교 근무하면서 조금씩 교육 민주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점이다.
약 10년 후 1999년 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합법화될 때까지 해직 교사들은 거리를 떠돌았다. 생전 처음 가혹한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일용직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포장마차, 군고구마 장사 등 생계를 위해 뛰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조 가입은 못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동료교사들은 비밀리에 모여서 상황을 공유하고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그때 나도 함께 참여하고 비밀 모임도 가졌으나, 해직자들만큼 절실하게 느끼지는 않았는데, 교사의 노조 결성과 그 타당한 교육적, 철학적 공부가 부족했던 것 같다. 교사는 자신의 교과에 대한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하고, 교사 이전에 정치적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반성을 하면서도 교육이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 중에 다행히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1300명이 복직되었으나 합법화는 되지 않으니 공개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 문민 정부라는 슬로건으로 독재를 벗어났으나 우리 사회는 해야 할 과제가 넘쳐났고, 97년 IMF 사태로 위기를 맞으면서 교원노조는 배부른 소리가 되어 버렸는데, 그 와중에도 마침내 99년 1월에 합법화가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불법의 굴레 속에서도 교단을 지키며 참교육에 매진한 분들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합법화 이후 99년 어느날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 분회 창립식을 가졌다. 모두 7,8명 정도의 교사들이 모여서 단위 학교 분회를 결성한 것이다. 분회가 모여 지회가 되고 지회가 모여 부산지부가 되니, 단위 학교의 분회 결성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개 선언이라고는 하지만 교직원회의에서 선포한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에 짬을 내서 선언문 낭독하고, 상황을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는 수준으로 기억한다.
합법화되었다고 해도 보수 정부는 집요하게 전교조를 좌익세력으로 몰아갔다. 교육부와 언론은 전교조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알림으로써 아마 지금의 기성세대 중에는 더러 전교조에 대해 달갑지 않은 인상을 가졌을 수도 있을 거라 짐작한다. 현재의 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무리한 수사로 이미지를 덧씌운 것과 비유한다면 지나칠지 모르겠다.
사실 합법화 되었지만 단체행동권이 없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만 있는 노동 2권 상태가 지속되었으며, 2013년에는 갑자기 전교조 규약을 문제 삼고 따르지 않자 '법외노조'로 결정했고 2020년 9월에야 법적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노동 2권 상태이다.)
전교조가 지난한 세월을 겪으면서 당했던 수모와 탄압을 생각한다. 교사는 수업활동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교직원 회의에서나 심지어 사석에서도 정부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면, 교장, 교감의 눈밖에 났고, 말 많고 따지는 교사,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는 교사, 촌지를 안 받는 교사를 전교조라고 판별하는 방법까지 공유되어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중요 직책으로부터 배재되었으며, 담임으로도 배제시켰는데, 몇 년 전부터 담임을 기피하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이제는 담임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세상 참 아이러니한 게 아닌가?
이제 전교조도 늙어버린 것 같다. 젊은 세대의 교사들은 여러가지 말많은 교원단체에 가입하는 일 자체에 관심이 없으며, 학창시절때부터 배여온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살아가거나 민감한 주제는 아예 회피하는 경향이다. 사범대학만 나오면 교사가 되는 구조에서 임용고사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왔기에 직업인으로서의 인식이 강하고 결국 믿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철저한 생존의식이 몸에 배여서 다른 곳에 관심을 두는 일이 적어진 것 같다.(서이초교사 사건은 공동체의 연대감없이 각자도생으로 버티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사례가 아닐까?)
교사운동, 교육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전교조든, 교사노조든, 교총이든 뭐든지 좋다. 단, 교사의 권리나 이익을 위함과 함께 교육 전문가로서의 올바른 교육운동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구조적 문제점을 찾아 그 근본적인 해결책과 정책을 미래 지향적으로 선도해야 한다. 교육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정부에게 지속적으로 교육 위기를 환기시켜야 하고 힘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교육부장관을 교육부총리로 격상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