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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일본어(3)

by 마라곤

오늘은 배우고 싶고 가까이하고픈 일본어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우리말의 어휘수는 약 15만이라는데, 반은 한자어이고, 반은 순우리말이란다. 그런데 이건 아주 오래된 상식인 것 같다. 사용 빈도만 보면 한자어가 약 70%, 외래어가 10%, 순우리말은 20%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온전히 저의 느낌입니다.)


그 한자어와 외래어 중에서 이도저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 무수히 많고, 그 대부분은 영어와 일본어에서 온 단어가 마치 원래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외국어 특히 일본어가 어떻게 우리말속에 남아 있게 되었는지 여러 자료를 찾아 간략해 정리해 보았다. 역사를 거슬러 가기도 해야 하고, 우리말의 핍박사도 그대로 노출될 것이며, 아울러 우리의 역사도 따라 전개될 것이다.




1. 일제강점기 일본어 교육 침투 실태

일본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기점으로 조선에 진출한 이후 조선의 항구를 차례로 개항시키고 일본영사관, 공사관을 잇달아 개설하며 조선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1886년 조선이 미국인 교사를 고용하여 세운 최초의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이후에는 영어 열풍이 일본어에 못지않았다. 당시 영어학교 학생 수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일어학교였다. 영어학교는 조선 정부에서 일어학교의 3배가 넘는 지원을 받았다. 미국이 서울 인천 간 철도 개설권을 장악하고 영국이 해관을 지배하면서 영어의 의사소통 필요성이 늘어나 영어학교가 호황을 누렸다. 독립협회를 이끈 서재필와 윤치호 등이 계몽운동의 기수로 떠오르고, 찹쌀떡 장사를 하다 영어로 외무대신에 오른 이하영 일화로, 학생들의 영어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고 신문에서도 영어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가장 주목받은 언어는 일본어였다. 처음부터 외국어 교육은 영어학교와 일어학교로 양분되었으며, 일본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일본어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게 되었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한성신보‘ 1895년 9월 15일 자에 따르면,

< 새로 설립되는 소학교에 수의과로서 일본어를 더해 방과 후 1,2시간 교수하고 동교의 생도 외에도 희망자는 동과를 배울 수 있게 한다. >

라고 하여 소학교에도 일본어를 가르치게 함으로써 일본어를 우위에 올려놓으려 했다. 이에 보통학교 저학년부터 일본어를 학습하게 하고, 나아가 초등교사 양성기관인 사범학교의 상급 학년에서는 일본어로 교수하게 했다. 이를 위해 일본어 교과서인 일어독본뿐만 아니라 지리, 역사, 산술. 이과, 수신 등의 교과서도 일본문으로 편찬하려고 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 대해 당시 여러 단체나 신문에서 일문 교과서 편찬 시도를 비판하였는데 대한매일신보가 1906년 3월 29일 자 사설에서 밝힌 내용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겠다.

.... 한국 아동의 초학교과를 일어 일문으로써 하는 사건에 대해 만약 유치한 아동이 자국의 언문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우선 타국의 언문을 배우게 한다면 자국의 사상이 보존되지 않고 자국의 정신이 전부 녹아 그 국가와 민족이 반드시 영원히 멸망할 따름이니...... 굴복해 감히 항론하지 못하니 이는 한국의 끝없는 참화가 실로 학부에서 비롯되니 지극히 원통하며...


결국 일제는 말과 글이 우리의 민족역량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부터 알고 조선어의 사용을 노골적으로 금지해 왔으며, 3.1 운동 이후 문화정책이란 이름으로 잠시 주춤했다가 중일전쟁 이후 거의 전면적으로 조선어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의 사상을 일본어로 주입하여 조선을 우민화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1930년 남자 30%, 여자 5%만이 보통학교를 다녔으니 그 당시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글은커녕 기본교육도 받지 못한 채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희생되었다고 하겠다.


2.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일본어 투의 언어사용 실태

일제 강점기 36년 그리고 그전부터 이 땅에 들어온 일본 제국주의의 문화침탈까지 더하여 반세기 이상 지속된 우리말 말살정책과 창씨개명 등으로 일제를 겪은 세대들의 성장과정과 생활 속에서 일본어가 뿌리 박히게 되었고, 동시에 한글 기초교육도 받지 못한 세월 속에서, 그 세대의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기성세대인 소위 베이비붐 세대조차도 선대로부터 들어온 일본어식 발음이 몸에 배여 해방 후 80년이 된 지금의 학교현장에서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일본식 표현을 의도하지 않게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문제는 많은 일본어식 한자가 우리말의 중국식 한자어와 뒤섞여서 우리말인지 일본어인지 영어인지 모를 국적불명의 발음과 표기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언어는 정신을 지배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일본어 투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친일을 정당화하게 되고, 그러한 의식 속에서 우리가 일제강점기 때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항일 정신이 희석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실로 그 해악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여기에 학교현장에서 우리말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어투 표현을 열거하여 우리의 언어생활 습관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갖고자 한다. 언어생활이란 공통적으로 두루 사용하고 있는 특성이 있어 학교에 국한할 수는 없지만 빈번하게 사용한다고 생각되는 표현으로 가능한 범위를 줄여보았다.


1. 학교 현장에서 자주 쓰는 일본어식 한자어 사례 몇 가지

- 가출= 집 나감 간지= 느낌 결식아동 = 굶는 아이

- 계주 = 이어달리기 고지 = 알림 공란 = 빈칸

- 마대 = 포대, 자루 매 = 장(예: 10매) 명찰 = 이름표

- 사양 = 설명서, 품목 사물함= 개인 보관함 역할 = 소임, 할 일

일본어식 한자어는 일본어라고 생각이 안들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는 실정이고 그 예는 무수히 많다.


2. 학교 현장에서 자주 쓰는 순수 일본어 사례

가라 = 가짜, 헛- 겐세이 = 견제 겐토 = 가늠, 어림짐작

고바이 = 오르막, 비탈 곤색 = 감색(1,2의 형태 혼용)

구루마 = 수레, 달구지 구사리 = 면박, 핀잔 기스 = 흠(집)

꼬붕 = 부하 나가리 =깨짐 나와바리 = 구역

노가다 = 노동자 다라이 = 대야 다이= 대, 받침

다쿠앙 = 단무지 뎃빵 = 우두머리, 두목 뗑깡 =쌩떼

몸빼 = 일 바지 무뎃뽀 = 막무가내 벤또 = 도시락

분빠이 = 분배 뽀록나다 = 드러나다 쇼부 = 흥정, 결판

시다바리 = 보조원, 밑일꾼 와리깡 = 나눠 내기 와쿠 = 틀

우동 = 가락국수 우와기 = 상의, 윗도리 유도리 = 융통, 여유

자바라 = 주름상자, 주름 대롱 지리= 싱건탕 지라시= 선전지


3. 학교 현장에서 자주 쓰는 영어표현의 일본식 발음 사례

- 고로케 = 크로켓(F. croquette) 난닝구 = 러닝셔츠(running shirt)

- 다스 = 열두 개(dozen) 돈가스=돼지고기 튀김(돈+cutlet)(1,3 혼용)

- 따블 = 갑절, 배(double) 만땅 = 가득(만+tank)(1,3 혼용)

- 미싱 = 재봉틀(machine) 바리깡 = 이발기(F. bariquand)

- 바케쓰 = 양동이(bucket) 밧테리 = 건전지(battery)

- 빠꾸 = 후진(back) 빠다 = 버터(butter)

- 빵꾸 = 구멍내기(나기)(puncture) 아이롱 =다리미(iron)

- 엑기스 = 진액(extract) 자몽 =그레이프프루트(P. zamboa)


근대화 이후 서양의 다양한 알파벳 사용 문자가 일본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파되었으므로 그 외국어를 일본인이 발음하는 과정을 거쳐 발음과 의미가 왜곡되어 전달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예전에 영어를 가르치던 많은 교사들의 발음이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아마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도서

최규진, <일제의 식민교육과 학생의 나날들>, 서해문집, 2018

김태웅, <신식 소학교의 탄생과 학생의 삶>, 서해문집, 2017

국립국어원,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 휴먼컬처아리랑,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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