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 아이네요...'
기억하기론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동안 독일어를 배웠다. 그때는 지금처럼 여러 개의 외국어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고, 남학교는 독일어, 여학교는 프랑스를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는 일부 남녀공학도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가 남학교, 여학교를 고집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오랫동안 단성학교로 이어온 전통을 깨지 않으려는 학교의 동창회 졸업생들이 결사 반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독일어를 거의 필수로 배워야 했고, 영어 외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부심도 느꼈던 것 같다. 젊디 젊은, 막 군대를 제대한 듯한 독일어 선생님은 독일어의 그 격한 발음으로 침을 튀겨가며, 독일이나 독일 문화에 대한 안내도 없이 정관사, 부정관사의 인칭별, 성별, 단복수별로 짜인 도표를 운을 맞추어가며 열변을 토했고, 우리는 그 운율을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외웠었다.
정관사 - 남성: Der Des Dem Den, 여성: Die Der Der Die, (데르 데스 뎀 덴, 디 데로 데르 디)
중성: Das Des Dem Das, 복수: Die Der Den Die (다스 데스 뎀 다스, 디 데르 덴 디)
부정관사 - 남성: Ein Eines Einem Einen, 여성: Eine Einer Einer Eine, 중성: Ein Eines Einem Ein
(아인 아이네스 아이넴 아이넨, 아이네 아이네르 아이네르 아이네, 아인 아이네스 아이넴 아인)
부정관사 여성 격변화 '아이네 아이네르 아이네르 아이네' 는 '아이네 아이네요 아이네요 아이네(= 아니네 아니네요 아니네요 아니네)'로 바꿔서 웃음 짓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것을 웃프다고 해야 하나?
의사소통기능이 중요하다며 회화체 문장으로 나오는 지금의 회화 교재와는 달리, 첫 시간부터 독일어 수업은 지독한 암기과목이었다. 아마 정관사, 부정관사 성별... 도표를 외운다며 한 달이 다 지나간 것 같다. 주 2회 수업이지만 여러 가지 학교 행사로 수업이 없어지기도 하고, 아이들이 제대로 외우는지 일으켜 세워서 암기 정도를 평가하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배운 독일어는 한 학기를 다 보내고는 그때부터 망각의 강을 건너고 다시는 사용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40년의 세월이 흘러 버렸다. 아마 그때 배운 독일어는 다음의 문장이 전부일 것이다.
Hallo(Hello), Ya(Yes), Nein(No), Guten Morgen(Good Morning), Guten Tag(Good Afternoon), Gute Nacht(Good Night), Ich habe Hunger(I am hungry), Danke(Thanks), Bitte(Please), Auf Wiedersehen(Good bye), Wie viel uhr ist es?(What time is it?, Ich liebe dich(I love you)
그때의 외국어 수업을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때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일 것이고, 그 당시의 외국어는 영어 외에는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적어도 대학에서 공부할 학생들에게는 실용적인 일본어나 중국어보다는 나은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이후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나에게는 학창 시절에 배운 독일어가 전혀 무용지물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그 나라의 문자를 단순히 익힌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가깝게 느껴지는 외국의 문화와 역사에 조금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