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역신문 기자였다.

by 나의 이름은 H

1년을 채우고 곧 이 자리를 떠난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힘들었던 기억이 너무 많았다. 직접 찾아야 하는 일보다는 지시받아하는 업무가 더 적성에 맞았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역 곳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연을 맺고 친해졌다. 좁디좁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만큼 좁은 지역이라는 것도 처음 깨달았다.


20대 초반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자님‘ 호칭을 부르는 순간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지역신문에서 진정 ’기자님’ 호칭을 들어도 마땅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게 된다. 일단 난 그 호칭을 들어도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 스스로가 이 옷을 입고 당당하게 활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 내향형이었기 때문에 밖에 나가는 순간 가면을 써야 했고,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는 시간이 힘들었다. 거절당하고 매정한 사람들이 무섭기도 했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이젠 익숙해졌다. 외근을 나가면 오로지 혼자이기에 신입은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혼자 해결해야 한다.


누구는 2024년 정말 빨리 갔다고 하는데, 난 지난 1년이 정말 지옥과도 같았고, 느린 하루의 연속이었다. 1년이 너무 길었고, 10년 같았다. 금요일은 연차 사용이 금지되고, 주말에는 광고받은 행사를 취재해야 했다. 이틀 이상 연차 사용을 해본 적도 없었다. 다시는 이 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월, 입사하고 처음 들었던 소리는 “구독자 확장 위해 목표 부수를 둔다.“ 지역신문이 다 이렇다 해도 못 버티겠다 싶었다. 누구한테 5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신문 구독해 줘라 소리도 안 나왔다. 신문이 보험도 아니고, 은행 예적금 상품처럼 이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회사에 애사심이 없으니 이런 마음이 드는 건가?


1월 1일에는 왜 취재를 안 했냐, 주말에 뭐 하냐 소리 이제 안 들어도 된다. 다니면서 정신이 너무 힘들었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집에 들어가면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을 하게 되고, 잠을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기력 그 자체였다. 이젠 신문 근처에 다시는 가지 않으리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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