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지역기자로 생활한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다. 군청 공무원, 각 마을 이장님, 어느 기관•단체의 회장님, 봉사자 기타 등등..
지난해 10월, 어느 봉사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조카 같다며 정말 잘 대해주셨던 분이 생각난다. 이제는 만나면 ‘내 사랑~’ 하면서 안아주셨다. 그저 할 일을 한 건데 글 하나로 많은 분들이 감사해 줄 때 뿌듯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기자는 이런 인사말 하나로 하루를 버티고, 한 달을 버티고, 1년을 버티는 것이다.
어느 날은 아빠 고향에 가서 회의에 들어간 적이 있다. 모두 다 처음 본 얼굴이었고, 이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공통점이 필요했다. 아빠랑 좋은 사이는 아니었는데, 아빠 이름을 말해가며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지역은 넓은 면단위 지역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친밀한 곳인 ‘마을’ 이장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다른 이장님들을 소개해 주고, 심지어는 아빠 외사촌까지.. 정말 좁은 지역이긴 하다. 힘들다고 알려진 면 지역에서 아빠 덕분에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어디 마을을 가더라도 "아빠가 여기 출신이에요.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알고 계세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경계심이 바로 풀려서 취재하기가 쉬웠다. 그냥 무작정 마을회관 현안 취재하러 갔어도 뭐라도 하나 들고 가라며 쥐어주고, 따뜻한 밥 한 끼 챙겨주는 분들이었다.
공통점이 없는 지역에서 친해지기는 다소 쉽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 공통된 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친구가 여기에 살았어요", "고모 댁이 바로 옆동네라서 자주 지나갔어요", "아르바이트하러 다닐 때 버스 타면 여기를 꼭 지나갔어요" 등등.. 극 내향형에게 정말 힘든 직업이었다.
기자 일을 하기 전에는 전혀 가보지 않았던 지역을 가서는 정말 힘든 점이 많았다. 첫 번째로 면장님, 이장님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우리 신문사를 싫어하는 이장님도 많았다. 면장들도 가지각색, 이장들도 가지각색. 그럼에도 1년 동안 계속 얼굴을 비추니 이제 반겨주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퇴사 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극 T 상사는 나가면 생각이 안 날 거라고 하는데, 이 소중한 추억에 대한 감정은 계속 들고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