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자로 살아남지 못했다.
글이 올라가는 날이면 퇴사 후 첫 여행으로 제주도에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할까? 힘들까?
지역신문 기자 1년, 연차는 5개에 불과했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6개는 내가 사용하지 못했다. 강제였다. 여기에 국회의원 선거날 출근해서 얻은 대체휴무가 1.5일 더 있었다.
신문 마감날은 연차를 쓸 수 없었다. 독감에 걸리거나, 가족 장례가 있지 않은 경우가 아니면 무조건 출근했다. 교정을 봐야 했고 지저분한 제목은 고치고, 오탈자를 발견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틀 이상 연차를 사용하지 못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사용이 가능했고, 오로지 기자들에게만 제약이 있었다. 아니 사실 사용은 할 수 있지만 기사 개수에 따라 압박을 하고 행사 취재가 있으면 사용하기 눈치 보이기 때문에 그 어느 기자도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우리 편집국장은 회사를 다니면서 국장이라는 이유로 연차를 거의 쓰지 못했다. 회사는 연차를 쓰지 못하게 제약을 두면서 연차촉진제도를 실시했다. 국장은 20여 개가 넘는 연차를 반차로 쪼개며 사용했다. (그래도 국장은 직업 만족도가 굉장히 좋아 보였다.)
입사 전 대학교 동기와 1월 중순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가기 위해 계획을 잡아놨었다. 신문사 입사 전 면접을 볼 때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때 3일 무급 휴가, 마감날 미출근을 제외하고 난 연차를 이틀 이상 쓴 적이 없다. 회사를 다니면서 연차를 쓴 건 고작 5일에 불과했다. 이렇게 열악한 사실을 입사하고 알게 됐다. 1월 오사카 여행 당시 수습기자였기에 잘리기만을 기도했다. 교토의 한 신사에 가서 10엔짜리 동전을 던지며 속으로 '회사 해고'를 빌었다.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야속했다.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고 내 생일이 다가왔다. 연차가 없었기 때문에 출근을 해야 했다. 출근으로 끝이 아니었다. 밤늦은 시각 읍면동장이랑 밥 먹는 자리에 불려 가서 9시가 넘도록 술자리를 지켜야 했다. 평소 앓던 지병이 있었기 때문에 술은 마시지 않았다. 술을 안 마신 죄로 술에 취한 사람들을 모시고 아파트 이곳저곳에 가서 내려드려야 했다. 지난해 내 생일 때 이야기다. 다시 돌아보니 정말 웃기고 비참한 생닐이다.
주말이면 지면 광고에 나온 행사를 찾아 취재를 가야 했다. 주말 아침이면 늦게 일어나서 좋아야 하는데, 4월부터 10월까지는 주말 내내 행사 취재만 갔다. 이 취재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 체계는 없었다. 합리화하는 경영진에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다녔다. 인력 부족으로 취재기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어도 회사는 재정 문제로 항상 무시해 왔다. 예전에 찍은 단체사진을 보면 기자가 지금의 2배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는다.
어느 날은 너무 힘이 들고 탈출을 하고 싶은 마음에 행사 취재가 있는 날이어도 못 간다고 통지를 하고, 후쿠오카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3박 4일을 떠나고 싶어도 연차를 사용하지 못해 주말에 다녀와야 했다. 주말이기에 돈도 2배가 들었다. 물론 전날에는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늦게까지 남아 취재를 해야 했다. 근데 너무 떠나고 싶었다. 사실 지방에 사는 사람은 인천공항을 가는 것부터가 일인데 나에게 닥친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다. 돈이랑 바꾼 일탈이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그 기억 하나로 3개월을 버텼다. 후쿠오카 나카스강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그저 '멍'만 때렸다. 아무 생각 없이.
또 회피를 하고 싶어서 11월 마지막주 제주도 여행을 잡았다. 제주도 여행을 하루 앞두고 밤늦게까지 취재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죽음 앞에 있는 가족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장례식에 갈 준비를 했다. 제주도 여행을 다 취소하고 서울에 올라가 죽음을 기다렸다. 갑작스러운 비고에 슬프기도 했지만 서울 가족들은 본인 고향의 기자가 됐다는 소식에 나름 좋아하는 눈치였다. 작은 아빠는 맨날 신문사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 보고 사촌들한테 보여준다고 했다. 퇴사가 예정됐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글이 올라가는 시점에 나는 제주도에 있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 그리고 마감날에 쉴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별 의미 없는 생일에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기사 발제 발표로 인해 떨어야 했고, 월요일이 되면 내일 회의 때 어떤 잔소리를 들을지 걱정해야 했고, 화요일이 되면 혼날 생각에 몸이 간지러웠다. 이젠 모든 근심 덜어놓고 자유를 느낄 예정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