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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May 25. 2021

친한 이웃 국가는 없다… 뉴질랜드와 호주

전세계 최고 ‘형제국’ 호주·뉴질랜드... 韓 대통령 방문에 ‘내가 먼저’ 다툼

1차 대전에서 호주-뉴질랜드 연합군 구성했지만 전쟁서 패배

패배 보다 값진 ‘호주-뉴질랜드 우호’ 관계의 시작점으로 남아

전세계적으론 이웃국은 항상 경쟁 대상... 韓-日 마찬가지


연합군을 구성해 오스만제국과 함께 싸웠던 역사를 가진 호주와 뉴질랜드 마저도 이런저런 문제로 다툰다. 세상을 둘러보면 친한 이웃국가는 없다. 한일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은 호주 등 오세아니아에선 동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 인식돼 있다. 때문에 매번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호주와 뉴질랜드 외교가에선 한국의 대통령이 어느 나라를 먼저 방문하느냐를 두고 호주·뉴질랜드 양국 외교가에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역대로만 보면 한국의 모든 대통령은 오세아니아의 맹주 호주를 첫번째 방문지로 삼아왔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호주가 아닌 뉴질랜드다. 매번 한국 대통령의 첫번째 방문지로 낙점받아왔던 호주 외교가에선 난리가 났다.


‘배경이 무엇이냐’, ‘관례도 전례도 없는데 왜 그러냐’, ‘섭섭한 것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외교 행낭을 타고 호주와 한국 사이 빠르게 오고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먼저 방문한 이유는 현재까지도 명확치 않다. 다만 ‘별다른 분쟁없이 사이 좋기로 소문난 두 국가 사이에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는 점은 특이했다. 한국 외교부는 호주 측 반발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호주 방문을 대신해 축전을 보내고, 주한 호주 대사를 뉴질랜드 대사보다 먼저 청와대로 초청하는 방식으로 기울어진 외교 의전을 보충했다는 설도 있었다. 뉴질랜드는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젊은 시절 함께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국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쯤되면 같은 국가?… 아니고 경쟁자= 호주와 뉴질랜드는 세계사에 보기 드물게 혈맹 같은 관계다. 호주 헌법은 뉴질랜드를 자국 영토로 규정해 두고 있다. 만일 일본이 헌법으로 한국을 일본영토로 규정하고 있다면 어떨까. 한국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뉴질랜드는 이에 대해 별달리 불만이 없다. 이유는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령으로 오랜 기간 동안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호주는 뉴질랜드가 호주 연방에 편입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낮다.


양국이 사이가 좋은 이유는 또있다. 역사적으로 별다른 전쟁을 치르거나 양국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쟁에 참가할 때는 함께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령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의 ‘파병요청’에 부응해, 오스만제국과 벌인 차낙칼레 전투에 병력을 파병했다. 두 국가는 차낙칼레 전투에 ‘호주-뉴질랜드 연합군(ANZAC)’를 구성해 전투에 참가했는데, 결과적으론 이 전쟁에선 두 나라의 연합군은 처절하게 패했다. 사망한 군인 수가 1만명을 헤아렸다.


그러나 패배한 전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양국의 군이 하나로 뭉쳤다는 점이었다. 패전의 경험을 공유한 두 국가는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이후, 양국 사이의 장벽을 모두 허물어버린 ‘타스만 협정’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 양국 연합군은 향후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같은 군을 형성토록 정비돼 있다. 함께 싸웠던 패전의 역사를 공유한 양국의 군대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ANZAC의 전통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양국은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양국의 국민들은 상대 국가를 검역 없이 다닐 수 있게 됐다. 이른바 ‘트래블 버블’로 두 국가가 상대국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양국은 이외에도 취업, 취학, 왕래, 체류에 전혀 제약이 없다. 뉴질랜드 국민은 호주에서 무상으로 고교 학업을 받을 수 있고, 이는 뉴질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대국 국민에 대해 ‘무검역 교류’를 승인한 국가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처음이다.


그러나 이처럼 밀접한 관계인, 바라보기에 따라선 거의 하나의 국가처럼 움직이는 뉴질랜드와 호주마저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치열한 경쟁 외교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힘있는 국가의 대통령이 어느 나라를 먼저 방문하느냐는 양국 외교가의 최대 이슈가 되고, 형님나라 호주가 동생나라 뉴질랜드를 향해서도 시기와 질투 시선을 보내는 것이 국제 정세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뉴질랜드 기자로부터 ‘호주가 아닌 뉴질랜드를 먼저 국빈방문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뉴질랜드가 한국 전쟁에 참가해줬기 때문이다’고 답했지만, 사실 한국전쟁에 참가한 호주 군인수(8407명)는 뉴질랜드 군인수(3794명)보다 두배 이상 많다. 이 때문에 문재인-김정숙 배낭여행 연원설과, 3세 아기를 안고 유엔총회에 참석해 주목을 끌었던 저신다 아던 총리의 힘 때문 아니겠냐는 설 등도 나돌았다.


▶이웃국은 원수국= 세계 지도를 펴놓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원수국이다. 한쪽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해 이렇다할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국-캐나다 관계나, 압도적 천연장벽인 사하라 사막을 경계로 둔 북아프리카 국가와 사하라 이남 국가 사이의 관계, 거대한 안데스 산맥으로 가로막힌 칠레와 브라질·아르헨티나 관계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 인접국들은 친밀함을 유지하기 보단 원수국인 경우가 태반이다.


근동아시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국가와 기독교 국가로 나뉘어져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도 간간히 총질을 해대는 관계고, 서남아시아의 맹주 인도와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거대 천연장벽인 히말라야를 사이에 두고서도 주먹질과 총질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다. 물론 워낙 추운 지역(히말라야)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라 총알마저 발사가 안되는 혹한기인 겨울이 되면 자연스럽게 소강 국면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인도에서 분리돼 독립국가가 된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지역을 사이에 두고 인도와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은 최근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슬림 인권탄압 문제로 중국과는 적대 관계를, 러시아와는 우호도를 높이고 있다.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해 남미 최빈국이자 내륙국으로 전락한 볼리비아는 여전히 대양국을 꿈꾸며 티티카카 호수에 해군을 육성중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을, 1597년에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한국인들은 북한 다음가는 적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인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18년 한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제조 공정 핵심물질들(고순도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폴리이미드)에 대해 ‘수출 금지’를 선언하면서 무역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친한 이웃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오랜 역사를 지리적으로 공유한 그들 국가들은 대개는 전쟁을 치렀고, 침략과 피침략의 역사를 공유한다. 특별히 이웃 국가가 ‘나쁜 나라’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확실한 것은 그만큼 교류가 잦기에 서로에 영향을 주는 범위도 넓다는 점이다.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명절 때마다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급증하는 것은 만남의 빈도와 충돌의 빈도는 비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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