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만 주면 네 한국인 친구도 죽여줄 수 있어. 어때?”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나쿠루에서 만난 한 흑인 형님은 관광을 떠나기 위해 아침밥을 막 먹고 나온 내게 우리 일행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나쿠루는 케냐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57만명 가량이다. 그는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수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가 손에 들고 있는 팔뚝 크기의 처음보는 무기에 대해 내가 관심을 가지자 “이 몽둥이는 동물을 잡을 때 쓰지 않는다. 사람을 잡을 때 쓰는 무기”라고 말하면서 ‘100달러면 네 친구도 죽여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마사이족의 짧은 몽둥이를 봤던 터라 ‘동물 잡는 용도냐’고 내가 묻자 답한 것이 ‘사람 잡을 때 쓰는 도구’라고 말했다. 아침을 먹고 이제 막 관광을 떠나기 위해 차량에 오르기 직전에 그가 나와 내 일행에게 던진 말은 ‘우스개’였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내게 ‘100달러면 친구를 죽여줄 수 있다’고 얘기한 직후 크게 웃었다. 나는 그 장면을 일행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해 여전히 사진으로 가지고 있다. 사진 속 그는 나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들었던 쇠뭉치가 달린 몽둥이를 잠시 빌려 내가 들었다. 그가 들고 있던 몽둥이는 지름이 약 4cm정도의 굵기에 길이는 60cm 정도 됐고 꽤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한쪽 끝에 쇠뭉치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내게 그 몽둥이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시범도 보여줬다. 손을 등 뒤로 가져가 몽둥이를 숨긴 다음 목표 사람에게 다가가 갑자기 몽둥이를 꺼내 사람의 머리를 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번만 때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내가 여기 수위로 일하는 것도 나의 용맹함을 호텔 주인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내가 이 무기로 죽인 사람이 10명은 족히 넘는다”고도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호텔 주인에게 “이 분이 자기가 사람을 여러명 죽였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고, 호텔 주인은 “네. 그 말은 사실이에요”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나는 호텔 주인과 그가 관광객인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후에 찾아본 바에 따르면 그의 말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쿠루는 2008년 부정 선거로 인해 적지 않은 수의 키쿠유족 사람들이 루오족을 죽였던 도시였는데, 내가 만난 그는 자신이 키쿠유족이라고 얘기를 했었다. 정황상 그의 말은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내가 내린 잠정 결론이었다.
▶부정 선거와 내전급 폭력사태= 2008년 벌어진 케냐의 내전급 폭력사태는 2007년 12월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의 선거부정과 부족간 갈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키쿠유족 출신인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과, 루오족 출신인 라일라 오딩가 야당(ODM) 후보의 경쟁이 부족간 전쟁으로 비화된 것인데, 갈등 양상은 ‘키쿠유 vs 루오’의 부족간 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당시 폭력 사태로 인해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고, 약탈과 방화를 비해 주거지를 잃은 사람의 수는 60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폭력 사태가 가장 심각했던 곳중 한 곳이 내가 방문했던 나쿠루였다.
케냐에선 또다른 대선이었던 2017년 10월 직후에도 시위가 일어났다. 선거에서 패한 오딩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시내 곳곳에 방화와 약탈을 일삼은 것이다. 시위대는 물론 경찰측에서도 사상자가 수십명씩 발생했다. 오딩가의 대통령 출마는 현재까지 4번이나 이뤄졌다. 대선이 다시 열리는 2022년 오딩가의 나이는 77세가 된다. 더이상 출마가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인데, 그러자 오딩가는 어이없는 일을 벌였다. ‘케냐 국민의 대통령’이라고 스스로를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오딩가의 ‘정치 노욕’에 오딩가 주변인들마저 그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다. 그러자 오딩가는 또한번의 정치 변신을 시도하는데, 이번에는 숙적이었던 우후루 케냐타 진영에 가서 손을 내밀고 악수를 내밀었다.
오딩가의 ‘돌발 행동’은 케냐 정치사에 있을 몇 안되는 대변혁에 속한다. 케냐 정치 불안의 핵심이었던 키쿠유족과 루오족 사이의 갈등이 어찌됐든 오딩가의 변심으로 해소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적이었던 키쿠유 족에 안긴 루오족 오딩가 덕분에 분출하던 정치불신의 마그마의 전체적인 온도가 내려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 있다.
관건은 오는 2022년 대선이다. 독립 케냐의 국부로 칭송받는 조모 케냐타의 아들 우후루 케냐타가 집권중인 현재 케냐의 다음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다. 케냐가 선거를 치를때마다 극심한 폭력 사태가 다시 나타나고 정치가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모순된 상황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최근 케냐에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폭력에 가담치 않겠다’는 명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케냐의 특성상 폭력 사태는 케냐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