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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Mar 26. 2021

낙관주의자들의 여행지 남미


“한국에서도 많이 죽는데요 뭐. 괜찮아요. 그렇다고 안갈 것도 아니고”

페루의 수도 리마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에 세워져 있는 장갑차

“한국에서도 많이 죽는데요 뭐. 괜찮아요. 그렇다고 안갈 것도 아니고”


우유니 사막 여행을 앞두고 있었던 어느날 한국어판 뉴스에 우유니 사막에서 투어 차량이 전복돼 차량에 타고 있던 한국인 관광객 4명과 운전사 겸 가이드가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났었다고 나왔다. ‘괜찮다’는 반응은 쿠스코에서 함께 생활하던 한국인 1인에게 해당 뉴스를 보여준 후 받은 대답이었다. 머리가 띵했다. 나는 ‘우유니 사막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갈지 말지를 고민하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걱정 안돼냐?”는 나의 재차 질문에 “사고 때문에 여행 안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오신거 아니세요?”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았다. 걱정은 되지만 한국에서 가장 먼 곳 남미까지 왔는데 우유니 사막에 안가기는 힘들었다.

그 때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꼬마 아이가 과자를 맛있게 먹으면서 울고 있었는데 왜 우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과자가 자꾸 줄어들어서 운다”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걱정이 되면 우유니를 안가면 되고, 우유니를 갈 생각을 했다면 걱정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두가지 중에 하나만 고민하는 것이 옳다. 사실 인생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쿠스코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들 몇명에게 우유니 사고 소식을 더 전했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괜찮다’고 했던 그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나를 포함해 힘든 오지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종특’은 낙관주의자들이란 점이다. 낙관적이지 않으면 도둑이 많고 강도가 창궐하며 사기꾼 또는 호객꾼들이 넘쳐나는 나라를 여행지로 선택키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가 다 낙관적이기 일쑤다. 왜냐하면 주변의 ‘위험하다’는 만류를 뿌리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해 그곳에 다들 도착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관 필터’를 통과한 다음 걸러진 이들만이 그곳에 모이기 때문에 해당 여행지에선 모두들 낙관주의자들만 만날수 있게 되는 셈이다.

사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직전 독일인 관광객 한명이 마추픽추에서 인생샷을 찍으려고 점프를 했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뉴스를 봤었다. 마추픽추가 매우 위험한 곳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결론은 일단 ‘고’였다. 볼리비아 비자를 받는 과정도 여행사를 끼지않고 하려다보니 준비해야할 서류니 과정이 복잡했었다. 미국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라 하더라도 무조건 미국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확인하고 허둥댔던 기억도 있다. 관건은 어찌됐든 그런 과정들을 모두 거친 뒤에 도착한 그곳 남미에서 만난 여행객들은 모두 낙관주의자들이라는 점.

▲직장 관둬야 남미

남미에서 만난 한국인들을 분류하면 크게 세가지다. 미국에 유학을 온 학생들, 또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사람, 또는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전공 한 학생들의 방학여행이다. 내가 제일 관심이 컸던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그만뒀던 20대 청년은 남미를 여행지로 생각했던 이유는 남미가 한국에서 가장 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젊어서 안와보면 늙어서는 더 오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사실 남미를 여행지로 꼽은 이들 대부분은 비슷한 이유를 여행지 선택의 이유로 꼽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인데 더 나이를 먹고서는 가기 힘들 것 같은 곳 그곳을 여행지로 나도 택했다. 관건은 시간이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남미를 다녀오기는 힘들다. 강력한 현실적 이유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2주 동안 휴가를 낸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사실 2주라고 해도 가는데에만 36시간이 걸렸다. 일본과 미국을 한번씩 경유했다. 돌아올 때엔 세번의 경유 끝에 48시간이나 걸렸다. 길에서 보낸 시간만 거의 5일에 가까운 여행 일정이기에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그래서 회사에 적을 두고선 남미를 다녀오기는 정말 힘들다. 가볼 곳은 많고 물리적 시간은 과도하게 촉박하다.

또다른 한 부류는 미국으로 여행을 온 유학생들이다. 미국에서 7~8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올 수 있는 곳이 바로 남미다. 그 중에서도 모험심 많고 낯선 곳에 대한 불안감이나 새로운 것을 대하는 데 겁이 없는 여행객들이 남미를 찾았다. 이들 중 다수는 콜롬비아로 남미에 입성해 에콰도르,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넘어간 뒤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당시로선 꽤 부유했던 베네수엘라에서 여행을 마감하는 일정을 짠 여행객들도 적지 않았다. 대략 2달 가량의 시간을 남미에서 보내는 일정인데 나같은 2주짜리 여행 일정만이 가능한 사람에겐 부러움의 극강 대상이었다.

또한번 느꼈던 것은 한국에 스페인어를 잘하는 한국사람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한번은 쿠스코 인근 계단 농경지와 소금광산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는데 가이드가 ‘스페인어로 설명을 할까요 영어로할까요’를 물었다. 나는 당연히 영어로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버스에 탄 한국인 10여명 가운데 단 2명만이 영어로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머지는 모두 스페인어 설명을 선호했다. 결국 가이드 설명은 스페인어로 진행이 됐고, 나는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스페인어 설명을 부탁했던 한국인들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전공한 학생들이었다. 한 학생은 “몇년 전부터 한국 스페인어 전공 대학생들 사이에서 남미 여행 바람이 불었다. 일부는 스페인을 두달 여행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식상한 여행지 스페인 보다 모험심이 강한 친구들은 남미로 여행을 온다”며 “남미를 한바퀴 둘러보면 내가 배우는 스페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진다는 선배들 조언도 있었다”고 했다.

사실 남미는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국가(남미 대륙 20개국가)의 말이 스페인어다. 남미를 통틀어 전체가 다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남미 전체 인구는 약 5억명 정도로 추산이 되는데 이 가운데 브라질(2억)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대단한 언어다. 특히 남미에서 스페인어의 중요성이 각별한 이유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여타 국에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영어를 어느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준은 되는데, 이에 반해 남미 국가 국민들은 대부분 영어를 아예 모른다. 스페인어의 중요성이 그만큼 중요한 곳이 남미다.

▲한 겨울인데 ‘지카 경고?’=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내가 한국사람이란 것을 확인하는 첫 순간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 휴대폰의 비행기 모드를 푸는 순간이다. 대략 5~6개 가량의 문자 메시지가 동시에 울리는데 한국 외교부에서 보내는 메시지다. 대사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는 전화 번호, 현지에서 조심해야 할 상황, 가지 말아야 할 곳 등을 빼곡하게 정리해서 보내는 외교부 문자 메시지는 대개 반갑다. 그러나 가끔은 엉뚱한 메시지가 오기도 한다. 페루 리마 공항에 내렸을 때의 나처럼 말이다.

리마 공항에서 비행기 모드를 풀자 여느 때처럼 여러 메시지들이 날아왔다. 리마의 기온과 주의해야 할 상황, 사기꾼한테 당하지 않는 법 등이 세세하게 쓰여져 있다. 미국 달라스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에는 한국인은 한명도 없었다. 리마에서 만난 한국 외교부의 문자는 그래서 더 반갑다. 그런데 문자 메시지 중에 눈에 밟히는 안내가 있다. ‘지카 바이러스’ 경고다. 지카바이러스는 임신한 여성이 감염될 경우 아기의 두뇌 발달을 저해해 뇌가 작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무서운 일이다.

문제는 지카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는 모기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리마를 방문했을 때엔 2016년 7월로 겨울 중에서도 혹한기에 해당한다. 겨울 중에서도 한겨울이 7월이다. 그런데 한국 외교부는 페루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지카 바이러스를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이 한여름이어서 그랬든지, 아니면 지난 여름(2016년 1월~2월)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에서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했던 기억이 워낙 강렬한 탓에 안내 메시지 수정을 하지 못해서든지 두가지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한국 외교부의 따뜻함과 게으름을 동시에 느낀 곳이 리마 공항이었다. 사실 외교부는 대한민국 정부 내 공무원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정부부처다. 가장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치르는 시험이 대체론 ‘사법시험’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법시험에 한해 합격하는 사람의 수는 1000명에 이른다. 로스쿨 입학 정원은 한해 3000명이나 된다. 이에 비해 외교부 공무원 시험은 과거에는 한해 50명만이 합격했고, 외무고시가 폐지된 이후에 외교관 선발시험의 1년 정원은 260명 수준이다. 시험 선발외에도 소위 성골은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들이 싹쓸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만의 리그가 성벽처럼 저만큼이나 높게 높이 쌓아진 곳이 바로 외교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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