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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Mar 29. 2021

아프리카 최대 ‘도시 슬럼’ 키베라(KIBERA)… 무

영국이 만든 괴물 슬럼… 최대 200만이 그곳에 산다

키베라 재개발, 완료까지 1178년 걸린다 암울 전망

쓰레기·에이즈에 코로나19까지… 빈곤의 땅 


“키베라 하늘에서 떨어지면 지붕위로 떨어진다”

키베라 옆 동네엔 신식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키베라 인구가 모두 새로운 곳으로 옮겨 사는 작업에는 1000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키베라는 과거 철도 부설 노동자들의 마을이다. 여전히 철도는 아프리카 최대 도시형 슬럼 키베라를 관통해 지나간다.
하늘에서 떨어지면 지붕위로 떨어질 만 하다.

아프리카 최대 슬럼인 키베라에 사는 사람들은 빼곡하게 들어찬 자신들의 동네 판자촌의 모습을 자위하며 이같이 말한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인구는 300만명 가량인데 이들 가운데 180만명이 키베라에 산다. 사실 키베라 내 몇명이 사는지는 불투명하다. 적게는 17만명부터 200만명이 넘을 것이란 주장까지 있다. 

이곳은 대개의 슬럼들이 그렇듯 전기와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경찰도 키베라 지역엔 들어가지 않는다. 경찰 단독으로 들어갔다간 공격받을 위험성이 크다고 했다. 여의도보다 작은 공간에 줄잡아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도시 슬럼(urban slum)’ 답게 키베라와 붙어있는 장벽 너머엔 현대식 건물이 세워져 있다. 현대식 건물이 지어진 것은 키베라 재개발을 위해 키베라 거주민들을 이전 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신식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케냐 정부 고위 관료들 등 돈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슬픈 키베라의 역사는 오늘도 반복된다. 거대한 저가 노동력들은 그곳에서 길러지고 있고, 그 필요성 때문에라도 케냐 정부는 거대 슬럼 키베라를 못본척 방치하고 무심해 하고 있다. 

▶“키베라 안가보실래요?”= 케냐에서 묵었던 민박집 주인 아저씨가 ‘키베라에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세계 최대의 슬럼 중 한 곳인데 정말 열악한 상황에 대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되겠냐’는 질문도 주셨다. 여행 계획에는 없었던 여행지다. 그러나 민박집 주인 아저씨의 설명에 관심이 동했다. “네 같이 가시죠~”라고 답했다.

키베라는 나이로비의 시내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약 6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지도상으로 보면 나이로비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민박집에서도 차로 불과 5분만에 도착했다. 키베라에 도착한 뒤 차에서 내리면서 ‘정말 가깝네요?‘라고 물었더니 민박집 주인 아저씨는 “여기가 도시형 슬럼이라서 그래요. 가깝죠?”라고 했다. 키베라 입구엔 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차단기를 올리고 내리는 사람이 서 있었다. 가로 5미터 정도 길이의 차량 진출입 통제 바가 설치돼 있었는데, 외부인 출입을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 일행이 키베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민박집에서 일하는 20대 청년 가장 라파엘이 키베라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파엘은 내게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 내 친구”라고 했다. 진짠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사실 200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산다는데, 친구들이 있어봤자 몇명이나 됐겠나 생각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라파엘이 내가 탄 차량에 타고 있었기에 차량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점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그곳의 열악함이 고스란했다. 최근에 비가왔는지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비에 녹은 흙바닥 속으로 신발이 푹 박혔다. 외지인, 특히 동양인의 방문을 처음 본 듯한 동네 아이들이 나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돈을 달라는 따위의 일은 없었다. 그들은 이삼미터 떨어진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키베라 중심엔 철도가 지나간다. 때마침 내가 도착한 지 몇분 지나지 않아 거대한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는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을 거의 스칠듯이, 그러나 단 한번도 지붕을 친 적은 없다는 듯 아슬아슬하게 절묘하게 스쳐 지나갔다. 흑인 꼬마아이들은 매반 지나가는 기차보다 동양인인 우리가 더 관심이 큰 듯 했다. 굉음을 내는 거대 기차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만을 쳐다봤다.

‘가옥에 한번 들어가 볼수 있냐’고 물었는데, 민박집 주인분은 “들어가시는 것은 상관 없는데, 풍토병에 걸리실 수도 있다”고 했다. “아.. 그럼 다음 기회에 들어가봐야 겠네요”라고 답했다. 집 옆은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영화나 TV에서 봤듯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을 알은 채 하는 50대 흑인 여성분이 인사치레로 흰색 접시에 오렌지 처럼 보이는 음식을 담아서 나왔다. 하나 드셔보시라는 시늉을 했다. 인사로라도 먹어보려 했는데 여성분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힌 손이었다. ‘하나라도 도와줘야할 형편’인데 얻어 먹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손 모아 ‘땡큐’를 연발하며 사양했다.

키베라 담장 밖에는 신식 아파트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키베라 거주민들을 이주 시키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키베라 내부 문제와 케냐 정부의 의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섥힌 결과다. 현재의 속도대로라면 키베라 개선 작업엔 1000년이 넘게 걸릴 것으로 알려진다.

▶짧았지만 긴여운= 인구 200만명이 거주하는 그곳은 왜 그렇게 계속 유지가 되고 있을까. 사람이 당최 살기 어려운 요건들을 모두 갖춘 채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가장 최근 버전으로 찾아본 키베라는 오늘도 여전히 그렇게 방치돼 있었다. 빼곡하게 들어찬 슬레이트 1층짜리 집들은 여전했다. 코로나19의 가장 나쁜면은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그 위험을 더 크게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그곳엔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들이 몇명이나 되는지를 추정-추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상이 파악이 안되면 대책도 세울 수 없는데, 현상 파악부터가 거대한 장벽이다.

키베라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키베라와 맞닿은 그곳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었던 신식 아파트형 건물들이었다. 최초 계획은 키베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그곳 현대식 건물로 옮기겠다는 것이었는데, 신식 건물이 좋다보니 그곳 건물에는 죄다 케냐 정부 고위 관료들이 차지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극과 극의 공존은 아프리카 최대 ‘도시 슬럼’의 상징이 됐다.

키베라엔 여전히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인구의 3분의 1이나 된다고 했다. 문명사회에선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돼버린 에이즈는 여전히 그곳에선 위험한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눈이 벌겋게 충혈된 사람들은 비싼 에탄올 대신 값싼 공업용 메탄올을 마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메탄올은 치명적 독성 물질로 소주잔으로 한잔만 마셔도 사람의 눈이 멀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물질이다.

키베라는 나이로비 도심 정중앙에서 불과 6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처음엔 나이로비 외곽에 위치했지만 도시가 확장하면서 현재는 나이로비 중앙에 위치하게 됐다. 평일 아침엔 키베라에서 잔 사람 수십만이 직장을 향해 출근하는 거대한 인구 이동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공평하게 걸어서 출근한다.

▶무심과 필요 사이= 키베라는 그러나 거지들만 모여 사는 동네는 아니다. 살인적인 실업률이라는 설명은 외부 세계의 설명이다. 그들도 아침 출근시간과 저녁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다. 교통수단이 전무한 그곳에선 그래서 평일 매일 아침과 저녁 대규모의 출퇴근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모두가 공평하게 걸어서 출근과 퇴근을 하게 되는데 출퇴근 인구만 수십만명이다. ‘그곳에 그것이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키베라가 그곳에 있는 이유는 시기 때마다 달라졌을 수 있다. 역사적으론 식민시대 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중간 기착 도시가 나이로비의 연원이었고, 그 때 철도 부설을 위한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키베라 였다면 오늘날은 나이로비의 값싼 노동력 공급원으로서 그곳이 거기에 있어야 할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대규모 신식 건물을 지어 키베라 현대화에 나섰다가 케냐 정부가 사실상 프로젝트를 포기한 이유도 키베라가 그곳에 있어 불편함 보다, 그것이 거기 있어 편리함이 더 컸기 때문 아닐까.

‘도시형 슬럼’은 그렇게 케냐 정부 고위 관료들의 무심과 필요 사이에서 오늘도 유지되고 있다. 살인적인 실업률 역시 마찬가지다. 고용주가 필요한 것은 어제 출근했던 노동자의 건강이 아니라 오늘 내 일자리에서 근무할 노동력이 오늘 정 위치에 서서 노동을 할 준비가 돼 있느냐다. 노동력의 대체 가능성은 실업률이 높을 수록 커지기 마련이고, 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어제보다 더 싼 가격으로 노동력을 가져다 쓸 수 있는 배경이 된다. 게다가 노동력에게 필요한 출퇴근의 시간까지 키베라는 ‘도시형 슬럼’의 잇점인 근접성을 확보해준다. 키베라 철폐보다 키베라 유지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볼 유인은 케냐 집권층 내엔 충분한 셈이다.

▶하루 75달러… 관광상품 된 키베라= 최근엔 키베라를 관광 코스로 개발한 여행사도 등장했다. 하루 75달러를 내면 키베라 내 곳곳을 보여주는 코스다. 여행사는 키베라 내 물장사, 샤워숍을 보여주고 사람의 배설물로 바이오가스를 만드는 공장도 볼 수 있으며,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학교 방문도 가능하다고 써놨다.

진짜 재미있는 것은 ‘주의할 점’ 사항인데 발이 더러워질 수 있으니 방수가 되는 신발(샌들 안됨)을 신고,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가이드에게 물어본 다음 찍어야 하며, 여권과 가방-지갑 현금은 호텔에 보관한 뒤 나올 것을 추천한다. 

DSLR 카메라 같은 고가의 장비는 가져오지 말 것을 권하고, 옷의 색깔도 밝은 옷은 피하라고 조언한다. 키베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도 했다. 마치 키베라 사람들이 ‘관광객은 현금이 많아’라는 인상을 가지지 않게 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몇명의 관광객들이 키베라의 모습을 보기 위해 저 관광 상품을 구매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키베라 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하루 수입은 1달러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5~6개에 이르는 행정구역은 각각의 세력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들 사이 가끔 칼부림이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좁은 공간 내에 사람들을 우겨 넣으면 별 것 아닌 일에도 싸움이 일어나기 쉽다.

나와 함께 동행했던 민박집 직원 라파엘의 한달 월급은 30달러라고 했다. 75달러면 키베라 내 거주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어마무지하게 높은 액수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라파엘은 세명의 아이가 있다고 했는데, 아내와 세명의 아이는 계속 키베라에 거주중이라고 설명했다.

키베라를 관통하는 철도. 이 철도는 동쪽으로 케냐의 몸바사 항까지 이어진다. 키베라 초기 정착민들은 이 철도 부설을 위해 영국이 강제로 끌고온 노예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은 이 철도를 이용해 아프리카 동부의 자원들을 자국으로 가져갔다.

▶철도 노동자들의 마을= 키베라의 역사는 나이로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나이로비는 1899년 영국이 케냐를 점령해 ‘동아프리카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 영국이 케냐 몸바사 항구와 캄팔라를 잇는 철도를 부설하는데 중간 기착 도시로 세워졌다. 키베라의 초기 정착민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끌려온 노동자들이었다. 나이로비에는 영국인 등 유럽인들이 거주했고 노동자들이 거주할 공간을 마련한 것이 키베라의 최초 모습이다. 

나이로비에 거주하기 위해선 영국 정부가 발행한 허가증이 필요했는데, 때문에 키베라에는 하층 노동자 계급이 거주하게 됐다. 소위 나이로비의 분리정책이 키베라를 슬럼으로 키운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키베라는 정글을 의미한다. 키베라의 위치는 애초엔 도시 나이로비의 외곽 끝단에 위치했었는데, 나이로비가 점차 도시화로 확장되면서 현재는 나이로비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슬럼이 형성된 것처럼 보이게 됐다. 

키베라 중앙을 여전히 철도가 관통하고 있는 것 역시 키베라 설립 역사 때문이다.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고용됐던 노동자들이 빠르게 작업장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키베라 내 철도가 다닐 필요성이 있었던 셈이다.

키베라가 인간 거주가 불가능한 주순의 악명 높은 슬럼으로 소문이 나자 재개발 계획을 세웠던 역사도 있다. 지난 2009년 케냐 정부(라일라 오딩가)는 키베라 인근에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 키베라 거주자를 옮기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달에 10달러만 내면 새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키베라 내 누비아 족의 반대와 정치 외풍, 그리고 새 아파트에 거주할 권리를 얻은 키베라 거주민이 재월세를 주고 다시 키베라로 돌아오는 등의 문제들이 속출하면서 재개발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케냐 정부는 키베라 땅을 정부 소유라고 주장하는 반면, 누비아족은 ‘키베라의 땅은 우리 것이다. 100년 넘게 살았다’고 주장하며 재개발에 맞서고 있다. 일부 키베라 거주민들은 새 아파트로 이전하는 대신 현재 키베라 내 건물을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야 한다고 반대하고 있다. 키베라 거주민들은 대부분 하루 소득이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이 때문에 월세 10달러를 내기 어려운 가족도 적지 않다. 재개발 계획은 최초 계획을 세운 이후 수차례 지연되고 있고, 현재와 같은 속도로 재개발이 이뤄질 경우 키베라 재개발 완료 까지는 1178년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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