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4학년, 한창 병원 실습하느라 바쁘던 시절이었다. 4월 넷째 주는 필수 과목인 응급의학과 실습이 있어 더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환자 예진해서 전공의 선생님들께 보고하고 내가 내린 진단이 맞는지 가슴 졸이기도 하고, 심전도 검사도 해보고 콧줄 (레빈 튜브), 소변줄 (폴리 카테터)도 넣어보고 동맥혈 채취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술기들을 배우느라 매일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응급실로 등교하던 나의 26살의 한 달. 그 한 달의 마지막 날, 나는 그를 만났다.
그 날은 응급실 실습 마지막 날이라 마음이 반쯤은 딴 데 가 있었지만, 조금 일찍 끝내주려나 하는 마음을 숨긴 채 평소와 다름없이 응급실을 오가며, 전공의 선생님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 때 치프 선생님 (4년 차 수석 전공의)이 우리 조원 넷을 부르셨다. 오후 4시쯤이라 일찍 끝내주는 건가 하는 사심 가득 안고 따라가 보니 차 뒷 트렁크 옆 짐들이 잔뜩 나와 있는 주차장이었다. 그 짐을 날라줄 사람이 필요해서 응급실에서 가장 없어도 되는 우리가 불려간 것이었다. 누구 짐이길래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인가, 하는 불만을 품었지만 분위기 파악이 빠른 우리는 말없이 정해진 장소로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짐의 주인은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내가 다니는 학교의 응급의학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은 교수님이었는데, 그는 이 병원에서 전공의를 끝내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군의관 생활 3년을 마친 뒤 바로 임용되어 군의관 생활하며 쓰던 짐과 책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산타모 트렁크와 뒷좌석에 그렇게 많은 짐이 들어갈 줄은 몰랐다. 아직 여름이 되기도 전인 4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땀을 흘려가며 주차장과 병원 지하 2층 연구실을 오가며 짐을 날랐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짐 날라줘 고맙다며 저녁을 사주겠다고 해서 병원 앞 삼겹살집으로 갔다. 식당에서 맞은 편에 앉으니 처음에는 큰 키밖에 안 보였던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부리부리한 쌍꺼풀 진 눈에 오뚝한 코, 넓은 이마에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얇은 입술. 누가 봐도 ‘잘 생겼네!’라는 말이 나올법한 뚜렷한 인상을 준 그였지만, 나에게는 새로 부임한 교수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 시켜놓고 나 몰라라 하지는 않는, 그래도 밥 사주며 감사 인사 정도는 할 줄 아는 상식 있는 교수님. 그게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병원에서 그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