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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꼽슬이 Feb 05. 2024

겨울엔... 눈을 보러 가요!

만항재의 상고대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 가족은 매년 겨울, 1월이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갑니다. 이건 남편의 취향이에요. 추위를 많이 타고, 추운 것을 싫어하는 그에게, 따뜻한 여름 햇살만큼 좋은 것은 없을 거예요. 그래서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그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겨울을 좋아해요. 시리게 차갑지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겨울의 추위를 즐겨요. 그리고 또 하나, 겨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새하얀 눈을 볼 때 저는 그 순간 마음까지 순백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합니다.


12월의 어느 날, 새로고침의 목적으로 눌렀다 바로 닫을 요량으로 열었던 광고문자가 제 시선을 잡았습니다. 눈을 보러 떠나는 기차여행. 약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가격이었지만, 왠지 이건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끌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혼자 갈 수 없는 여행이기에 잠시 주저하다, 몇 시간 뒤에도 뇌리에 남아 신호를 보내는 그 여행을 3인분으로 결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낼 무렵, 여행을 떠날 날짜를 정하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2월의 목, 금, 토, 일, 월요일 중 하루를 골라 당일치기 여행의 날짜를 확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서로의 스마트폰 캘린더를 들여다보며, 함께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을 골랐습니다. 각자의 스케줄이 바빠서 날짜 고르기가 오히려 수월했습니다. 2월 2일 금요일로 정해놓고 시간은 흐르고 흘렀습니다.


여행을 일주일쯤 남겨놓고, 저는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갈 만항재라는 곳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을 읽으며, 경치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고조되었고, 그와 함께 날씨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의 겨울 풍경이 눈이 온 다음 날에 최고의 경치를 선사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우리가 가기 전날 눈이 오는지 안 오는지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눈 예보가 없는 것입니다. 여행 날짜까지 일주일 간 눈도 오지 않고, 낮 최고 기온은 심지어 영상 5도를 웃돌았습니다.


눈이 다 녹아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함께, 날씨도 바꾸어 버렸던 저의 날씨운을 믿어보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희한하게 제가 여행을 가면 우기인 나라에서도 도착날과 떠나는 날 외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도 여행 날짜를 정하기 전에는 비 예보가 있다가 제가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면 그 지역에서는 비 예보가 없어져 주변 사람들에게 저는 날씨 요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날씨 요정의 운은 이번에도 통했습니다! 없던 눈 예보가 생긴 것입니다. 2월 1일 함백산에 내린 눈은 며칠간 심했던 미세먼지도 몰고 갔습니다. 정말 눈이 내렸을까, 출발 전까지도 미심쩍었던 설경은 가이드님을 통해 사실임을 알게 되었고, 여행지로 가는 기차와 버스 안에서 저는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드디어 만항재 쉼터에 도착해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는 순간, 제가 마주한 풍경은 이 곳이 정말 우리나라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는 만항재는 해발 1330m라고 합니다. 강원도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에 걸쳐 있는 함백산 정상이 멀지 않은 곳이지요. 이곳의 순백의 겨울과 큰 키의 나뭇가지에 핀 멋진 상고대를 보고 있자니, 이곳은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설국이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고, 아이는 어디선가 구해서 먼저 온 분들이 타고 남긴 포대자루를 깔고 썰매를 타고, 남편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눈을 맞으며 그렇게 우리는 그곳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겼습니다. 패키지여행이 아니었다면 몇 시간이고 그곳에서 보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더 밀도 있게 그곳의 경치를 누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이드님이 버스 안에서 설명해 주기로는 5~6월 야생화가 흐드러졌을 때, 만항재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해요. 그래서, 조용히 혼자 생각해 보았지요. 그때 꼭 다시 와보자고요. 그땐 그냥 차를 운전해서 온 뒤 조용히 꽃길을 걸으며 명상을 해보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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