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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꼽슬이 Jan 08. 2024

한겨울에 산막이옛길, 가보셨나요?

시골에서 동네 택시 타기

 주말에 1박 2일 부산 여행이 잡혀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앞에 3일의 시간이 더해졌다. 그래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수년째 가지고 있던 숙박권이 생각났다. 나는 아이쿱생협 조합원이다. 괴산과 구례에 있는 자연드림파크 숙소 중 한 곳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는 숙박권을 주는데 그걸 몇 년째 쓰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쓸 기회가 온 것이다. 구례는 좀 멀고, 부산으로 가는 경유지로 좀 더 나아 보이는 괴산을 목적지로 정했는데,  다행히 아직 방학 전인 학교들이 많고 주중이라 예약은 어렵지 않았다.


 숙소는 정했으니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 퍼뜩, 우리 가족이 매주 일요일 저녁 루틴으로 시청하는 '1박 2일 괴산 편'이 떠올라 다시 뒤져보니, 산막이옛길을 걷고 유람선을 타는 멤버들을 보고 나중에 저기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중에서도 고소공포증을 가진 김종민이 아래를 쳐다보지 못하고 냅다 걸어갔던 연하협 구름다리는 꼭 건너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위시리스트를 떠올리며, 여행코스를 계획했고 산막이옛길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 걷기 시작할 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이곳을 첫 여행코스로 선택한 나를 셀프 칭찬하며, 남편과 아이와 셋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걸었다. 가는 길에 송로버섯과 사과를 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서 소금장에 찍어 버섯 시식도 해보고 그 향에 반해 내려가는 길에 꼭 사간다며 약속까지 했다.


 워낙에 오르막길을 싫어하는 남편인지라, 조금만 경사가 가파른 곳이 나오면 속도가 확 떨어진다. 아직 몸이 가벼운 딸은 날다람쥐처럼 뛰어가고, 남편은 뒤에서 느릿느릿 양반걸음으로 올라오고 난 중간에서 앞서 간 아이를 부르고, 남편은 재촉하며 그렇게 걷다 보니 아이가 무척 좋아할 법한 출렁다리를 만났다.

생각보다 스릴 있고, 보기보다 길었던 소나무 출렁다리를 건너며 우린 즐겁게 사진도 찍고 일부러 더 신나게 흔들며 걸어갔다. 딸은 날 닮아 별로 겁이 없어 이런 다리를 만나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출렁다리를 지나서 한참을 걸으니 목이 좀 말랐고, 등산이 아니라는 생각에 물 한병도 안 들고 걷기 시작한 것을 후회할 때쯤 정말 신기하게 약수터가 나타났다. 플라스틱 표주박에 떨어지는 약수를 받아 한 잔씩 들이키고 우린 다시 걸을 힘을 냈다.

1950년대에 괴산댐을 만들게 되면서 생긴 괴산호를 왼쪽에 끼고 산막이옛길을 걷는 것은 꽤 좋은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관광 100선에 여러 번 올랐던 곳인 만큼, 경치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다만 겨울이라 아쉬움이 남아 초록이 우거질 때 한 번, 단풍 들었을 때 한 번 더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달까.

 꽤 걸었다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지도에서 봤던 한반도지형으로 생각되는 경치가 보였고 등산로를 표시하는 입간판이 보였다. 올라가서 정말 한반도 지형처럼 보이는지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역시나 남편은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냥 앞으로 쭉 걸어갔다.

산막이마을을 만났고, 여러 식당들이 있었는데 평일이고 겨울이라 닫혀있는 곳이 많았다. 마을을 지나고 나니 이정표가 보였는데, 구름다리까지 1km가 안된다는 손글씨가 있었다. 그걸 믿고 우리는 더 앞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가도 가도 다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는 지쳐서 업어달라, 더 이상 못 가겠다, 힘들어 죽겠다를 외치는 딸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걷기를 40여분, 그러고 나니 저 멀리 드디어 연하협 구름다리가 보였다!

 보이는 곳에서도 10분 이상을 걸어가서야 다리 위에 설 수 있었는데 그때 시간이 벌써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2시 반쯤 걷기 시작했으니 2시간 넘게 걸어온 것이다. 다리는 꽤 멋있었고, 건너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일부러 다리 위에서 뛰면서 더 출렁거리게 하는 스릴을 즐길 수 있는 가족이라 무서워 못 건너는 일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다리 중간에서 보이는 앞, 뒤 풍경이 정말 멋져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지금이 한겨울이고, 호수가 얼어서 유람선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치밀하지 못한 도보여행은 우리에게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큰 숙제를 남겨주었다. 다시 두 시간 반을 걸어서 돌아가기엔 해가 너무 짧았다. 돌아가는 길 중간쯤에서 캄캄해질 것이 뻔한데, 어두운 숲길을 걷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앱을 확인하지도 않고 카카오택시를 부르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괴산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조금 걸으면 카페와 매점이 있다는 입간판을 보고 걸어가며, 거기서 동네 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곳도 문이 닫혀있었다.

앞이 캄캄해져서 어째야 하나 고민하던 중, 남편이 동네 택시를 부르는 방법을 검색해서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 동네 택시를 부를 수 있었고 20분을 꼬박 기다리니 흰색 택시가 멀리서 나타났다. 미터기 켜지 않고, 2만 원이라는 말씀에 알았다고 감사하다고 얼른 가자고 우리는 탔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기사님께 괴산댐과 산막이옛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어 2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유람선이 있었다면 산막이옛길 입구까지 타고 가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다시 한번 이곳을 찾을 이유가 생기기도 했다.


다음엔 기필코 유람선을 타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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