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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살이 일 년, 나의 정체성은 요리하는 사람

덴마크에서 밥 하기

by 꼽슬이

나에게 음식이란, 대부분은 허기를 채워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식욕은 생존에 필수적인 생리적 욕구이기에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나에게서 식욕이 달아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어떤 음식을 주어도 평균정도만 된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모험적 측면을 어느 정도는 즐길 줄 아는 나는 처음 접하는 음식에도 곧잘 도전하고, 여행을 가면 현지식을 먹어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나와는 달리, 집밥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한식을 사랑하는 남편은 짧게 3박 4일의 해외여행 중이라도 최소 한 두 번은 한식을 챙겨 먹어야 하고, 메뉴판 속 모르는 음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으며, 잘 모를 땐 햄버거를 시키면 기본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우리가 1년 하고도 3개월을 머나먼 서쪽 나라, 덴마크에서 살게 되었으니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나의 큰 고민은 밥 하기였다. 한국에서는 외식도 가끔 하고, 배달음식도 먹으며 워킹맘이라는 핑계로 주방에서의 삶을 나의 인생에 크게 자리 잡게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외국에 나와보니 밥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시간의 8할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때로는 그게 싫어서 도서관으로 피신도 해보고, 동네 커피가게로 도망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어느새 나는 다시 주방 아일랜드 수전 앞에서 쌀을 씻고, 야채를 다듬고, 고기를 썰고 있었다.


아무 음식이나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인 나이지만, 이곳의 외식거리는 너무나 한정적이고 그마저도 입맛에 맞는 경우가 많지 않았으며, 매번 사 먹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곳, 올보르라는 도시에는 살고 있는 한국인이 서로 누가 누군지 모두 알 정도로 극소수였기에 일식집과 중국집은 있어도 한식집은 없었다. 그나마 아시안 마트가 몇 군데 있고, 그곳에 가면 한국 장류와 한국 라면 몇 종류가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마트마다 쌀은 여러 종류를 팔고 있었고, 배추, 파, 마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먹고 싶은 음식은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는 것이 일상이었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침마다 밥은 싫고 빵을 달라, 시리얼을 달라, 떡을 달라 투정하던 딸아이마저도 한식 타령에, 평일에 학교에 매일 들려 보내야 하는 도시락까지도 한식으로 해달라고 난리이니 요리를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한정된 양념과 재료로,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요리들을 애써 만들어내면, '그 정도로 맛있지는 않은데...'라는 부끄러움이 들 정도로 극찬을 해주는 남편 덕분에, 나는 더욱 열심히 한식을 요리하게 되었나 보다. 그리고 딸아이는 여기 온 지 몇 달쯤 지났을 때, 엄마가 싸 준 도시락 덕분에 아이들 사이에서 인싸가 될 수 있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나에게 해 주는 바람에 '이제는 샌드위치로 간단히 도시락을 싸면 안 되겠냐'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킬 수밖에 없게 했다. 그렇게, 나는 일 년 3개월을 요리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이제 한 달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과연 나는 돌아가서도 이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요리를 하게 될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익힌 기술이 아까워서 잊지 않기 위해 가끔은 하게 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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